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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피케티, 자본주의, 민주주의 / 김종철

등록 2015-02-26 18:49

피케티의 책이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경제적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최종적 해법은 ‘민주주의의 강화’이다. 그러나 종래의 민주적 제도·관행이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지금 민주주의 강화란 무슨 뜻일까? 민주정치란 무엇인지 ‘원점’에서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소설책도 아닌데, 이 두꺼운 책을 사람들이 실제로 얼마나 읽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책 <21세기 자본>은 여러 언어들로 번역본들이 계속 나오면서 갈수록 크게 주목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어판도 벌써 출판되었고, 일본어판, 중국어판도 역시 출판되었다. 중국에서는 작년 말 이 책의 번역본 출간과 함께 초청된 저자가 주요 대학 등에서 10차례 이상의 강연을 했는데, 그때마다 강당은 청중들로 꽉 찼고 강연 직후는 질문이 쇄도했다고 한다. 이 책의 중국어 번역본이 이미 20만부 이상 팔렸다고 하니, 그 열기가 대단한 것은 틀림없다.

일본에서도 피케티에 대한 관심은 예사롭지가 않다. 번역본 출간과 함께 저자도 이미 다녀갔을 뿐만 아니라, 벌써 이 책에 대한 개설서, 연구서들까지 여러권 나왔고, 또 앞으로도 계속 나올 모양이다. 그리고 금년 들어서는 지식인 잡지들은 말할 것도 없고, 주요 시사·경제주간지들도 거의 빠짐없이 피케티의 책을 해설·점검하는 특집기사들로 최신호를 채우고 있다.

피케티의 책을 둘러싼 이 비상한 열기는 무엇 때문일까? 실제로 현재의 글로벌 자본주의경제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판적으로 점검·해부하는 책들은 이미 적지 않게 나왔고, 어떤 점에서 피케티보다 더 깊이 있고 날카롭게 문제의 본질을 파헤치고 있는 학자·연구자들도 드물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피케티의 책은 불평등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도 이와 관련된 정말로 중요한 본질적인 문제(예컨대 생태적 위기, 화석연료와 자원고갈, 원자력 문제, 근대 화폐금융시스템 자체의 근원적 사기성(詐欺性) 등등)에 대해서는 별로 주목하고 있지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피케티를 주목하는 것은 우선 그의 책이 이른바 주류 경제학의 추상적인 숫자놀음과 조금도 닮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어디까지나 구체적인 삶의 현실에 가장 밀착된 주제를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비전문가들도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체로 서술된 매우 예외적인 경제서이다. 그러면서 이 책은 자본주의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온, 우리가 쉽게 항거하기 어려웠던 몇몇 신화적인 믿음(혹은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리는 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그동안 “위통에 먼저 물을 채우면 그게 넘쳐서 아래에 있는 통으로 흘러내린다”는 이른바 ‘트리클다운’ 이론이라는 것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고, 국가정책은 늘 이 이론에 입각하여 ‘기업 살리기가 먼저’라는 전략으로 일관해왔다. 그 과정에서 노동자와 약자들의 기본권리는 폭력적으로 유린되고, 부의 분배 혹은 재분배는 끊임없이 미래의 과제로 미뤄져 왔던 것이다.

피케티는 지난 100~300년간의 각종 통계자료를 면밀히 조사·검토하여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객관적인 방법으로 ‘트리클다운’이라는 게 전혀 근거 없는 이론임을 명확히 입증하였다. ‘자본’ 쪽을 대변하는 언론들이 <21세기 자본>에 대해 크게 반발하고, 이런저런 구실로 이 책의 중요성을 깎아내리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은 ‘트리클다운’ 이론으로 다수 민중을 기만하고 국가정책을 좌지우지해온 오랫동안의 관행이 피케티의 이 책으로 암초에 부딪쳤다고 느끼기 때문임이 분명하다.

피케티의 책이 지금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것이 매우 시의적절하게도 세계 최대의 현안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적 불평등(빈부격차)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의 심각성이 어느 정도냐 하면, 연초에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적 ‘엘리트들’의 모임(‘다보스’ 회의)에서도 으뜸 주제가 불평등 문제였다. 또 세계적 민간기구인 ‘옥스팜’이 2015년 정초에 내놓은 보고서는 “전 지구적으로 갈수록 소수의 부유한 엘리트의 손에 부가 집중되고 있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즉 2014년도 세계 최상위 1% 부유층의 소유 재산은 세계 전체 부의 절반에 육박하고, 상위 10% 부자들은 세계 전체 부의 9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추세는 급진적인 변화가 없는 이상 심화·확대되어 갈 것임을 ‘옥스팜’은 예측하고 있다.

피케티가 행한 작업은, 요약하자면, 이 추세를 수백년에 걸친 장기적인 흐름 속에서 파악하여, 그것을 ‘자본소득률>노동소득률’이라는 도식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상속재산, 금융자산, 부동산 등에 의한 불로소득자(rentier)의 재산 증식 비율은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소득 획득 정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갈수록 앞질러 가는 게 법칙처럼 돼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거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추세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불평등이 왜 심각한 문제냐 하면, 첫째 이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존립을 크게 위태롭게 한다. ‘옥스팜’ 보고서도 이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오늘날 부유층 엘리트와 기업들은 “자신들의 이익 증진을 위한 정책 환경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매년 막대한 로비자금을 쓰고 있고, 그 결과 “전체 인구의 이익이 돼야 할 공공자원들이 강력한 로비세력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사용되고 있다. 요컨대 세계 전역에 걸쳐서 엄청난 불의(不義)가 상시적으로, 체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 이 상황에서는 갈수록 땀 흘려 일하며 산다는 게 무의미해질 수밖에 없다. 상속과 증여에 의거한 재산의 무한증식을 돕는 메커니즘이 거침없이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노력으로 살겠다는 이들이 바보 취급을 받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무엇으로 삶의 의욕을 느끼고, 일하는 보람을 느낄까?

그리고 극소수에게 부가 편중되고, 다수가 궁핍 혹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시달리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사회적 불안정은 물론, 결국은 자본주의 경제 자체의 작동 불능 사태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생산을 해봤자 그것을 소비해 줄 구매력 있는 노동자나 소비자가 없다면 경제가 돌아갈 리 없고, 그 결과 기업도, 투자자도, 자본가도 파산을 면치 못할 것임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경제가 전면적으로 정체상태에 빠져 있는 것도 실은 이러한 파국으로 가는 초기 단계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오랜 불평등 역사에서 잠시 세계적으로 격차가 예외적으로 대폭 줄어든 시대가 있었다. 즉, 1945년 이후 1970년대 초까지가 그랬다. 그 원인은 괄목할 경제성장이나 합리적인 경제적·정치적 정책 때문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1, 2차 “세계대전에 의한 혼돈과 그것에 수반된 경제적, 정치적 쇼크”였다고 피케티는 설명한다. 그러니까 전쟁으로 인한 잿더미 속에서 부자들의 재산도 소멸돼버렸고, 그 ‘백지상태’로부터 다시 사회재건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피케티의 이 설명은 매우 중요하다. 그동안 자본주의 사회는 원칙적으로 개개인이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통해 (언젠가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향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위에서 전개돼왔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와 짝을 이뤄온 ‘자유민주주의’ 정치 시스템의 근본신념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 민주주의가 오히려 불평등의 심화·확대를 촉진하거나 적어도 방조해왔음이 이제 분명해졌다. 피케티의 최종적 해법은 ‘민주주의의 강화’이다. 그러나 종래의 민주적 제도와 관행이 완전히 실패한 것으로 드러난 지금 민주주의의 강화란 대체 무슨 뜻일까? 원천적으로 불합리한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엘리트’ 직업정치가들에게 국가운영을 맡기고 있는 지금과 같은 ‘대의민주제’를 가지고 과연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가짜 민주주의에 속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말로 민주정치란 무엇인지 ‘원점’에서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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