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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창식의 말과 소통] 사드, 여론몰이의 위험성

등록 2015-02-26 18:38수정 2015-02-26 18:38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바로 엊그제 아침, 신문을 읽다 깜짝 놀랐다. “사드 한반도 배치, 찬성 56% 반대 33%-박 대통령 취임 2년 여론조사”라는 어느 한 유력 신문의 1면 머리기사 제목을 보고서였다. 기사 첫 문장은 “미국 고고도 미사일 방어(THAAD·사드) 체계의 한반도 배치에 관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찬성했다”고 적었다.

사드는 날아오는 적의 미사일을 150㎞의 높은 고도에서 대응 미사일로 격추한다는 미군의 무기체계다. 미국이 일본에 이어 오산·평택의 미군기지에 배치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과 한국 관리들은 의도적 모호성이라고 할까? 한국 배치 가능성을 시사하되 공식 협의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두 나라 관리들은 사드가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라고 주장하지만, 무기 체계의 특성상 중국을 겨냥하기 십상이고 실제로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는 게 현실이다.

어떠한가? 지금과 같은 설명을 듣기 이전에 사드가 뭔지 충분히 알고 있었을 ‘일반 국민’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사드는 매우 전문적인 쟁점이다. 전문가들이 모여 정보를 공유하면서 문제점을 깊이 검토해야 마땅하다. 이 신문은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는데, 전화로 두어 문장 불러주고 찬반을 물을 일이 전혀 아니다.

이 신문이 공개한 설문 문항은 더 이상하다. 응답자의 55.8%는 사드 배치에 대해 ‘북한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므로 찬성한다’고 답했다고 한다. ‘중국과 러시아 등 반대하고 있는 나라와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반대한다’는 답변이 32.6%였다고 한다. 응답자들은 사드 자체에 대한 찬반보다는, 남한의 국민정서 특성상 지극히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북한의 위협에 대처한다…’는 표현에 쏠렸을 것이다. ‘중국, 러시아 등과 외교관계를 고려해…’ 문항에는 큰 나라 눈치나 본다는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예”가 적게 나왔을 것이다. 여론조사 문항 작성 때 금기인 유도성 표현이 강하게 담긴 것이다.

언론의 여론조사 보도는 여론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는 것이다. 즉 다양한 시민의 의사가 표현되고 공론장이 활발하게 작동할 경우 공동체를 위해 더욱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효율성에 대한 신뢰 말이다. 문제의 보도는 여론을 정확히 파악하여 대변하는 게 아니라, 입맛대로 여론을 왜곡한 것이다. 언론기관으로서 당연히 해선 안 될 일이다.

사드는 참으로 심각한 문제다. 사드 배치를 강행하면 한반도는 북·중·러 3각 동맹과 한·미·일 3각 동맹의 대결장이 될 우려가 크다. 대중국 무역·투자에 대한 타격을 걱정하기 이전에, 우리의 안보와 평화가 송두리째 위협받을 수 있다. 정부는 미국과의 협의 경과를 공개하는 동시에, 사드 한반도 배치 반대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 언론이 이런 관점에 서서 정부의 태도 변화를 강력히 요구하고 나서도 부족한 마당에, 어설픈 여론조사로 공론장의 질서를 흐리고 있으니 참 딱하다.

1898년 4월 미국과 스페인의 전쟁을 촉발한 군함 메인호 사건 때 꼭 이랬다. 스페인이 지배하고 있던 쿠바의 아바나항에 정박한 미 해군 메인호에서 폭발이 발생해 침몰했다. 미국 언론은 일방적으로 스페인의 소행이라고 지목했다. “메인호를 기억하라”며 전쟁을 선동했고, 미국은 결국 쿠바를 공격했다. 뒷날 미 해군은 메인호 자체 사고 가능성을 제기했다.

신문 재벌 조지프 퓰리처(1847~1911)가 운영한 <더월드>와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가 이끌던 <뉴욕저널>이 그릇된 여론몰이를 주도했다. 시장 점유율 1, 2위를 다투던 끝에 빚어진 일로, 황색 저널리즘이란 신조어가 여기서 비롯했다. 퓰리처는 뒷날 잘못을 반성하고 언론을 바로 세우는 데 기여하고자 퓰리처상을 제정했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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