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9월30일 독일 뮌헨에서 영국·독일·프랑스·이탈리아 4개국 정상은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란트 지역의 영토분쟁에 대한 협정을 체결한다. 이른바 ‘뮌헨 협정’이다. 영국의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유럽을 전쟁으로부터 구했다”고 자랑한 종이 한 장짜리 이 협정은 여러 냉소적인 신조어를 낳으며 두고두고 후대의 입길에 올랐다.
뮌헨 협정에서 유래한 대표적인 국제정치용어 가운데 하나가 ‘뮌헨의 순간’(Munich moment)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뮌헨 협정을 통해 독일계가 주로 거주하던 수데텐란트 지역을 히틀러에게 넘겨줬다. 이 지역만 히틀러에게 넘겨주면 그의 정복욕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오산이었다. 히틀러는 이듬해 3월 체코슬로바키아의 나머지 영토를 삼켰고, 9월에는 폴란드를 침공해 2차 세계대전의 방아쇠를 당겼다. 이 때문에 ‘뮌헨의 순간’은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국가에 대한 유화책 사용을 반대하면서 단호한 군사적 입장을 취해야 하는 순간을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사용한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2013년 9월 미국이 시리아에 대한 공습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 “지금 ‘뮌헨의 순간’에 직면해 있다”며 연방 의원들에게 군사개입 방침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도 계속해 ‘뮌헨의 순간’이 오르내린다. 지난해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에 이어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발발한 정부군과 친러시아적 성향의 분리주의 반군 간 내전을 수데텐란트 지역 영토분쟁에 빗대서 하는 말이다. 우크라이나 내전의 배후로 러시아의 팽창욕을 의심하는 쪽에선 대러 강경 대응이 필요하다는 근거로 ‘뮌헨의 순간’을 자주 언급했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선 억울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냉전 종식 이후 나토 가입국가를 되레 늘리는 등 서구의 ‘동진 전략’이 러시아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항변할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반군이 지난 12일 맺은 휴전 협정이 아직은 불안한 이유다.
이용인 기자 yy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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