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가정에서는 누구도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독식하는 아이도 없고 천대받는 아이도 없다. 오늘날의 스웨덴은 이런 좋은 집이 아니다. 누구는 대궐 같은 집에 살고 누구는 오두막에 사는 것도 행운으로 여긴다. 이런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집’을 건설하기 위해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1928년 1월18일 스웨덴 사회민주당 대표, 페르 알빈 한손의 국회 연설문이다. 한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집이 돼야 한다는 한손의 호소는 국민들의 광범위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사민당은 이후 44년(1932~1976년) 동안 장기집권을 하며 기초연금, 아동수당, 무상교육 등을 차례로 도입해 복지국가의 기틀을 잡았다.
당시 복지부 장관이었던 구스타브 묄레르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복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보편복지’를 확고한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묄레르가 보편복지만큼이나 강조했던 원칙이 또 있다. 정부 행정의 효율성과 도덕성이다. 그는 “세금을 한푼이라도 낭비하는 것은 국민을 착취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끊임없는 개혁과 자기점검을 통해 국민의 세금을 가장 효율적으로 써야 국민의 신뢰와 복지국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스웨덴에서 공직생활을 했던 신필균 복지국가여성연대 대표는 “공무원 교육을 받을 때 인상깊었던 대목은 ‘공직자에게 가장 중요한 도덕은 돈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라고 강조하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스웨덴에서 유학한 후배는 “스웨덴에서 정치인은 ‘적은 월급을 받으며 밤낮없이 일하는 불쌍한 사람들’로 인식된다”고 말했다.
스웨덴 국민들은 정말 세금을 많이 낸다. 부자뿐 아니라 중산층, 서민까지 엄청 낸다. 스웨덴 사람들이 자기 돈 아까운 줄 모르는 별종들이어서가 아닐 거다. 국가의 비전을 제시하고 국민을 설득해내는 정치권의 리더십, 그리고 국민 신뢰를 얻기 위한 정부의 철저한 노력이 바탕이 됐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복지를 확대해도 증세는 안 해도 된다”(증세 없는 복지)고 국민을 속이거나, “복지 과잉으로 가면 국민이 나태해진다”(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며 복지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는 정부여당은 말할 것도 없다. ‘보편적 복지를 통한 복지국가를 지향한다’고 버젓이 당 강령에 걸어놓고, ‘연말정산 파동’이 터지자 정권을 흔들 수 있는 호재라며 ‘세금폭탄론’을 퍼부은 제1야당은 어떤가. 노무현 정부 시절, 보수층이 주도해 조세저항을 부추기는 데 이용했던 그 세금폭탄론 말이다. 스웨덴의 보편복지만 부럽고, 이를 위한 높은 세금부담에 대해서는 선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침묵하는 행태로는 부족한가.
행정체계의 효율성은커녕 “대통령이 원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수십조원의 세금을 4대강 사업이나 자원외교 같은 곳에 퍼부은 정부는 또 어떤가. 대통령에게 잘 보여야 장관도 되고 공기업 사장도 되고, 그 장관, 사장에게 잘 보여야 국장, 과장으로 승진할 수 있으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사업을 벌이는 거다. 어차피 내 돈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인가.
국민을 바보로 알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 대통령의 인사권만 보이고 국민 무서운 줄 모르는 공무원들이 있는 한 우리 국민들의 증세에 대한 거부감을 탓할 수만도 없다. 최근 연말정산 사태를 계기로 폭발한 복지-증세 논란이 우리 사회의 복지와 세금에 대한 인식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싶다가도, 논의만 무성하다 실제 복지확대와 조세개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떨치기 힘든 이유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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