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사막 한가운데서 모래바람을 만나면 지형이 완전히 바뀌어 길을 잃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하면 목숨까지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1차대전 당시 아랍 부족을 이끌고 아라비아반도에서 오스만튀르크 세력에 대항해 게릴라전을 지휘한 영국인 토머스 에드워드 로런스(일명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쓴 자서전 성격의 전쟁기록물 <지혜의 일곱 기둥>에도 이런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1991년 아버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연합군이,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를 응징하면서 붙인 군사작전 이름은 ‘사막의 폭풍’(Desert Storm)이었다. 이것만 봐도 사막의 모래바람이 얼마나 위험하고 치명적인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중동에서 강한 모래바람이 일고 있다. 진짜 모래바람보다 더욱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전략풍’이다. 물리적 지형이 아니라 세계 전략 지도를 바꿀 수 있는 초대형 폭풍이라고 할 만하다, 그 바람의 중심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있다. 1월27일 인도를 국빈방문 중이던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일정을 몇 시간 줄인 채 대규모 초당파 조문단을 이끌고 급히 리야드로 날아간 것은 사우디 정세의 급박성과 중요성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을 계기로 서방 주요 정상들이 참석한 가운데 보름 전 파리에서 열린 테러 규탄 행진에도 불참했던 그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선 압둘라 국왕이 1월23일 숨지고, 그의 이복동생인 살만 왕세제가 즉각 즉위했다. 살만 새 국왕은 이복동생인 무끄린을 왕세제로 지명함과 동시에, 차차기 왕위 계승자에 처음으로 압둘아지즈 초대 국왕의 손자 세대인 무함마드 빈 나이프 왕자를 내세웠다. 국왕의 죽음과 함께 다음과 다다음, 그 다다음 국왕까지 일사천리로 정하는 것을 보면, 이보다 안정된 체제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사정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오히려 신속한 후계구도 결정이 안팎의 불안한 상황을 의식한 ‘안정 과시’ 행위일 가능성이 크다.
이슬람 수니파의 맹주인 사우디는 지금 안팎으로부터 여러 가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대외적으로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쪽에서는 시리아와 이라크의 상당 지역을 점령한 채 기세를 올리고 있는 이슬람국가(IS)가 수니파 과격 원리주의에 동정적인 사우디 젊은층을 홀리고 있다. 아주 최근엔 남쪽 예멘의 수니파 정부가 시아파의 무장세력에게 전복되었다. 동쪽에서는 중동의 전통적인 경쟁국인 시아파 맹주 이란이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 이후 이라크엔 친이란 정부가 들어섰고, 더구나 맹방 미국은 이란을 견제해주기는커녕 핵 협상을 고리로 관계 개선을 꾀하는 등 사우디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2010~2011년 튀니지에서 이집트까지 거세게 불던 아랍 민주화 바람은 금력을 앞세운 사우디의 강력한 개입으로 일단 불은 껐으나, 속불마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다.
안으로는 인터넷과 사회관계망 서비스를 통한 민주화 바람이 젊은층을 중심으로 빨리 퍼지고 있고, 여성 인권의 확대 요구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반면, 국제 원유 값의 폭락으로 석유 수출액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여기에 왕실 내부의 권력 투쟁이나 분란이 가세한다면, 중동뿐 아니라 세계가 요동칠 게 뻔하다.
최근 일본인 2명이 이슬람국가에 납치되어 살해되고, 이슬람국가에 자진 입국한 것으로 추정되는 김아무개군 사건이 일어나고서야 ‘중동이 멀리 있지 않다’는 걸 실감했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중동’은 에너지·안보·경제·문화·종교 등 여러 방면에서 이미 그보다 훨씬 깊숙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다. 다만, 근시에 걸린 우리가 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중동의 모래바람’이란 용어가 축구 국가대표 경기 때만 등장하는 상투어가 돼선 곤란하다. 우리 생활 전반과 연결된 관용어가 돼야 한다. 중동의 변화가 우리 삶을 전적으로 결정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단 아주 많이 좌우하고 있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트위터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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