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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박 대통령의 ‘나우 오어 네버’

등록 2015-01-26 21:01수정 2015-01-27 21:00

엘비스 프레슬리가 1960년에 발표한 ‘이츠 나우 오어 네버’(It’s Now or Never)는 이탈리아 민요 ‘오 솔레 미오’에다 가사만 새로 만들어 붙인 노래다. “오늘 밤 내 사랑이 돼 줘요/ 내일은 너무 늦어요/ 지금 아니면 영영 끝이에요(It’s now or never)/ 내 사랑은 기다리지 않아요…” 이 노래는 그해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했고, 노래가 실린 싱글음반은 전세계적으로 2500만장 이상이나 팔려나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가혁신 분야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이 노래를 입에 올렸다. “노래도 그런 게 있죠. ‘나우 오어 네버’인가 (…)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다는 각오로 반드시 (정책을) 실천해 달라.” 박 대통령이 평소 이 노래를 잘 알아서 인용한 것인지, 아니면 참모들이 써준 ‘말씀 자료’를 읽은 것인지 알 길은 없지만, 어쨌든 대통령의 이런 비유는 언론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했다.

박 대통령의 비유적인 화법은 비단 이것만이 아니다. “깨진 창문 하나를 방치하면 다른 창문들도 계속 깨지게 된다”는 ‘깨진 창문 이론’을 비롯해 ‘진돗개론’ ‘개구리론’ ‘300일 국수론’ ‘유도탄론’ 등 어록의 가짓수도 많고 종류도 다양하다. 일부 언론에서는 ‘대통령의 톡톡 튀는 화법’이란 제목 아래 비유의 참신함을 칭송하고 그 안에 담긴 심오한 뜻을 해석해내기 바쁘다.

하지만 대통령의 재치있는 비유와 말솜씨에 비례해 공허감은 더욱 깊어만 간다. 나라는 총체적 난국에 빠져 있고 여기저기서 국정 혼선을 지적하는 아우성이 넘쳐나는데 한가하기 짝이 없다는 느낌마저 든다. 이런 비유를 놓고 “국민과 더 가까운 소통을 위한 기술”이라는 따위의 해석도 나오지만, ‘원천적인 불통’이 해소되지 않는 상황에서 ‘소통의 잔기술’이 지니는 한계 또한 명백하다.

따지고 보면 ‘나우 오어 네버’니 ‘깨진 유리창’이니 하는 비유야말로 다른 사람이 아닌 박 대통령이 스스로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청와대 창문은 여기저기 깨져서 너덜너덜하고, 국정 쇄신의 기회는 ‘지금이 아니면 영영 끝’인데도 박 대통령은 오불관언이다. 갈아끼우지 않은 ‘깨진 큰 유리창’은 여전히 청와대 비서실 현관에 버티고 있고, ‘깨진 작은 유리창들’은 일부 위치만 바뀌었을 뿐 오히려 더 중요한 자리에 배치됐다.

그러니 국민의 ‘사랑’은 멀리 떠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사람들도 대통령의 새해 기자회견, 내각과 청와대 개편 등을 지켜보며 사랑을 접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끄떡없으리라는 대구·경북에서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근혜 사랑’에서 헤어나지 못하리라 여겼던 노년층의 마음도 점차 떠나가고 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실망의 한숨뿐이다. 그래서 박 대통령의 지금 처지는 ‘나우 오어 네버’가 아니라 차라리 ‘나우 이츠 오버’(Now it’s over)라고 해야 좋을 형편이다.

박 대통령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다.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들이 26일 이례적으로 증세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정직하지 못한 태도를 정면 비판하고 나선 것도 한 예다. 문제는 박 대통령 본인은 기존의 확고부동한 자기확신에다 ‘집권 3년차 증후군’마저 앓고 있다는 점이다. 취임 이후 2년간 축적된 정보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이 모든 정치와 정책을 끌고 나갈 수 있다는 오만한 자신감 말이다. 박 대통령의 말이 ‘단문형’에서 더욱 ‘장문형’으로 바뀌고, 갖가지 비유와 인용이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런 자신감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대통령의 하늘을 찌르는 자신감과, 너무 빨리 찾아온 레임덕과의 간극이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여기에 박 대통령과 이 정권의 비극이 있다.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박 대통령이 이왕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를 인용했으니 현 정권의 위기의 본질을 그의 또 다른 히트곡으로 설명해볼 수도 있을 듯싶다. ‘고집불통 애인’을 노래한 ‘하드 헤디드 우먼’(Hard Headed Woman) 말이다. 이 노래 가사를 보면 “고집불통 여자는 남자에게는 가시”라는 구절이 반복돼 나온다. ‘고집불통 대통령’(hard headed president)은 과연 국민에게 무엇일까.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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