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월급이 조금 올랐다. 팀장이 되면서 팀장수당이란 것도 나오고, 회사 임금체계도 일부 바뀐 탓이다. 실수령액은 그만큼 오르지 않아 월급명세서를 한참 들여다봤더니 소득세를 비롯해 떼가는 돈들이 덩달아 늘었다. 아까웠다. ‘복지 확대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다’는 기사를 몇년 동안 줄기차게 써온 주제에 우스웠다. 남 얘기 하긴 쉽지만 자기 일 되면 만만치 않은 법이다.
<한겨레>의 새해 여론조사 결과(<한겨레> 1월1일치)를 보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떤 사회가 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47.3%의 응답자가 ‘빈부격차가 적고 사회보장이 잘돼 있는 사회’, 28%가 ‘힘없는 사람들도 평등하게 보호받는 사회’를 택했다. 둘은 모두 정치와 경제의 민주화가 잘돼 있는 복지국가를 가리키는 것일 거다. 하지만 이런 복지국가 확립에 필수요건인 증세에 대해서는 27.4%만이 찬성했다. 요약하면 ‘복지는 좋지만, 세금을 더 내기는 싫다’는 것이다.
새해 첫날 함께 근무하던 선배가 말했다. “이게 현실 아닐까?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한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선배 말이 맞다. 나부터가 이런 이중사고에서 자유롭지 않다. 이런 현실을 보수는 놓치지 않고 파고든다. “거봐. 세금 더 내기 싫지? 복지는 공짜가 아니야. 이쯤에서 그만하자고.”
우리 사회가 멈춰 있진 않았다. 10년 전만 해도 ‘증세’는 금기어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가 복지국가 계획을 담은 ‘비전 2030’을 발표했을 때, “결국 증세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한나라당과 여론의 공세에, 여당인 열린우리당마저 선거에 불리할까봐 등을 돌렸다. 지금은 새누리당 안에서도 심심찮게 증세론이 흘러나온다. 2004년 <한겨레> 여론조사에서 증세 찬성은 18.6%에 그쳤다. 변하고 있긴 한데, 참 더디다.
요즘은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부자들이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대기업도 더 내야 하고.” 맞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당신’도 ‘나’도 더 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금은 ‘나는 말고’ 부자가 더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소득이 상위 10%(연봉 6000만원)인 사람도 자기는 서민이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한 세제 담당 공무원의 말이다.
우리나라는 고소득층과 대기업뿐 아니라 중산층과 서민도 세금을 적게 내고 있다는 사실은 여러 통계가 보여준다. 4인 가족 평균 임금 근로자의 소득세 실효세율(2013년 기준)을 보면,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평균(10.2%)은 우리나라(2.4%)의 네배다. 스웨덴(18.0%) 같은 복지선진국은 우리의 7배다. 물론 고소득층은 훨씬 더 낸다. 부가가치세도 20%가 넘는다. 대신 아이 키우기도, 병원도, 대학도, 노후도 큰돈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서비스를 ‘공동구매’하는 것이다. 내는 돈은 부자가 더 많은데, 받는 서비스는 똑같으니 중산층과 서민에게 훨씬 좋다.
그래도 부자 증세를 먼저 하고 중산층 증세는 나중에 해야 하지 않느냐고? 이렇게 생각하면 어떤가? “나도 더 낼 테니 당신들(부자들)도 더 내라. 우리 같이 형편껏 더 내자.”
고소득층은 이미 많이 내고 있다고 당당하고, 중산층은 대출금에 교육비에 남는 돈이 없단다. 월급쟁이는 자신들만 유리지갑이라 투덜거리고, 자영업자는 카드결제 때문에 숨을 구석이 없다고 불만이다. 개인들은 돈 잘 버는 기업이 내라 하고, 기업은 다른 나라만큼 내고 있다고 맞선다. 서로 미루면 결과는 뻔하다. 현상유지다. 현상유지가 가장 좋은 계층은 이미 많이 가진 사람들이다. 나 자신의 이중사고부터 깨야 한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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