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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생태론적 영성과 영적 치매 / 김경재

등록 2015-01-08 18:44

자유와 평등,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기업이윤과 보편복지는 상호충돌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양극적 요소들은 ‘모순의 역설’로서 항상 동시적이고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두 요소를 동시에 인정하고 협력해가야 하는 것이다.
종교나 이념을 떠나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종이 또 한번 우리를 놀라게 했다. 로마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의 연말 좋은모임 자리에서, 바티칸 관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초심을 잃고 어리석음과 욕망의 노예가 되어 ‘영적 치매’를 닮은 병증을 나타내고 있다고 유례없이 강한 어조로 회개를 촉구했다. ‘영적 치매’에 걸린 증상이라는 파격적 은유를 사용한 것이다. ‘정신적 치매’라고 표현해도 될 것을 ‘영적 치매’라고 표현한 것은 단순히 그 모임이 종교적 모임이었기 때문일까?

가족 중 치매를 앓는 슬픔을 경험해 본 사람은 이 몹쓸 병이 암보다 더 비극적인 질병임을 안다. 사랑하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고, 두려움과 우울증에 시달리는 부모 혹은 반려자를 바라보는 가족 구성원들은 고통에 시달리며 절망에 빠진다. 오늘의 화두를 ‘생태론적 영성과 영적 치매’라고 내세웠지만 ‘영성’이라는 개념과 ‘영적 치매’라는 단어가 금방 와닿는 어휘는 아닌 것이다. 영성(靈性)이라는 어휘는 우리 생활문화 속에 존재해 왔고 그 개념도 우리 조상들은 잘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근대사회가 점차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이른바 ‘기계론적 세계관’이 지배했기 때문에, 영성이라는 어휘의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기계에는 영혼이 없기 때문이다.

서양철학 2000년은 ‘존재망각’ 시대였다고 하이데거가 지적했는데, 달리 말하면 ‘영적 치매’ 증상을 앓아왔다는 뜻과 같다. 그러나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근대 이후 시대) 상황을 감지하는 현대인들은 영성이라는 단어를 다시 회상하게 되었다. 사람다운 품성의 세가지 특징으로서 지성, 감성, 덕성을 꼽아왔는데 왜 영성을 추가하거나 덕성 자리에 영성을 넣는가? 21세기의 성숙한 시민이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을 조화롭게 갖춘 사람이라고 인문학자들이 앞장서서 말하고 있다.

영성이란 지성, 감성, 그리고 덕성을 아우르면서 세계를 전일성과 상호관계성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마음의 능력이다. 사람이 자연의 자녀이지만, 몸 중심에로 진입해 오는 새로움의 빛과 영기를 받아 시천주(侍天主·하느님을 모심)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섬김) 하는 사람의 초월성과 개방성이 영성이다. 하늘과 땅과 사람, 그 셋이 구별되면서도 상호 내주하고 회통관계 속에 있음을 자각하는 깨어난 의식이 영성이다. 하늘과 땅의 공능(功能) 매개자로서 책임을 감당하려는 사람의 존재론적 용기와 신명나는 역동성이 영성이다. 우주에 편만하면서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신비한 실재가 자비, 사랑, 충서(忠恕)임을 직감적으로 느끼고 반응하는 능력이 영성이다.

‘생태론적 영성’을 이해하려면 생태계 근본질서와 그것의 지속가능한 조건을 통찰해야 한다. 생태계의 모든 구성적 참여자는 생태적 자리와 적정 규모가 있다는 조건과 종의 다양성을 수락하는 조건이다. 생태적 자리, 적정 규모, 그리고 종의 다양성이 생태계를 지속시키고 역동적으로 만드는 필요충분조건이다. 균형, 절제, 관용의 윤리가 강조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세계와 생명체를 보는 눈에 두가지 모델, 곧 기계론 모델과 유기체 모델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기계론 특징은 자동차나 시계로 설명된다. 기계론적 합리주의자들의 신념에 따르면, 자동차가 수많은 부품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듯이, 몸과 자연도 원자나 분자들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부분은 독립적이고, 부분 안에 전체는 깃들일 수 없다. 부품이 고장 날 땐 교체하면 되고, 교체할 때 남아 있는 부분들이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기계론적 실재관에서는 힘의 크기, 수량, 능률성, 실효성이 가치평가의 척도가 된다.

그와 대조되는 유기체적 실재관은 동양적 세계관에서 주류를 이뤄왔고, 서양에서도 중세기까지는 대세를 이루었다. 근대 이후에도 낭만주의, 생의 철학, 그리고 과정철학은 유기체적 실재관을 주장하면서 기계론적 실재관에 저항했다. 유기체적 실재관 특징은 몸으로 설명된다. 사람 몸도 손상된 장기를 이식하거나 인공심장을 부착하듯이 기계론적 요소가 존재한다. 그러나 유기체로서 몸의 단위세포 유전자 안에는 그 생명체 전체가 담겨 있다. 몸의 일부분이 아프거나 기뻐하면 전체가 통증과 환희를 느낀다. 창조적 진화는 물질계, 생명계, 정신계를 출현시킨 과정을 거쳐왔지만, 한번 출현한 생명은 물질과 질적으로 다르고, 사람의 정신현상과 영성은 단순한 분자생물학 수준으로 환원되거나 설명되지 않는다.

생태계에서 유기체 생물들은 이전에 없던 새로움과 아름다움을 창발시키면서 질적으로 공진화(共進化)하고 있다. 지구를 유기체적으로 파악하려는 인류 지성사의 큰 흐름은, 20세기 중반기에 한 걸음 더 깊이 나아가 유기체적 생태주의로 문명의 대전환이 이루어졌다. 생태론적 영성을 각성하게 된 것이다. 생태론적 실재관은 환경운동가와 여성주의자들만의 특별난 세계관이 결코 아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 지성인들이 파악한 생태계의 특징들은 생명종의 다양성, 공생하는 상보성, 자발성과 포용성, 지속가능성, 생명체들의 존재론적 평등성이라고 강조한다. 그것을 깊이 깨닫고 각자 삶의 자리에서 실천하는 사람이 ‘생태론적 영성’을 지닌 사람이다.

지금은 생태론적 영성 시대요, 유기체적 생태계가 생명과 사회의 진실된 참모습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과 가치관은 명백해진다.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명분으로 비정규직 연장과 해고를 쉽게 하는 기업체 관행, 일부 당원의 일탈행위를 빌미로 정당을 해산시켜 다양성을 인정 못 하는 민주주의 역주행, 남북 군부 실세들의 시대착오적 이념논쟁과 위험한 전쟁놀음의 집단자살적 광기 증상, 한줌도 안 되는 청와대 비서진의 국민 기만과 국정 농단, 인간 영성을 스스로 상품화하는 종교 마피아들의 물신숭배적 성공신화, 그것들은 모두 더 이상 거론할 가치도 없는 빈껍데기요 녹슨 기계들이다.

공동선을 향해 함께 전진할 수 있다는 신념과 더불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굳게 확신해야 한다. 겉으로 보면 기계론과 유기체론, 자유와 평등, 자유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기업 이윤과 보편복지가 상호충돌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심층적으로 보면 그 양극적 요소들은 ‘모순의 역설’로서 항상 동시적이고 상보적인 관계에 있다. 깨어 있는 대기업의 최고경영자(CEO)도 <경영은 사람이다>(2014)에서 시장은 이윤만 추구하는 기업들의 약육강식 정글이 아니라, 적정 규모와 다양성 존중 원리를 따라야 하는 시장생태계임을 눈떠서 보자고 강조한다. 창과 방패 관계가 아니라 손바닥과 손등 관계인 것이다. 양자택일하거나 적당히 타협해야 할 성질의 사안이 아니고 두 요소를 동시에 인정하고 협력해가야 하는 것이다.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올해는 한민족이 영적 치매 상태에서 홀연히 깨어나는 해방과 분단 70주년이다. 민족사의 새로운 전환이 이뤄지는 시운(時運)이 돌아왔다. 남북한 두 정상이 만기친람하는 군주시대의 후진적 통치 스타일을 버리고, 민주시대의 큰 정치, 곧 민족화해와 공생공영의 정치를 해야 한다. 국가를 위해 백성이 있지 않고 백성을 위해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이 모든 문제발단의 장본인이자 해결 책임자이다. 남북이 서로 의심하고 비방하기보다 피차 진의를 수용하고 신뢰하는 올해가 되어야 한다. 통일을 성급하게 서두르지 말고 먼저 해원상생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정치적 수사(修辭)는 피차 그만두고 작은 실천 행동이 중요하다. 평화협정 체결, 이산가족 상봉, 교류협력, 민간인 상호방문은 정치적 흥정 대상이 아니고 동족으로서 너무 당연한 필수사항이다. 올해는 대한민국 여권을 가지고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

김경재 목사·한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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