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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고명섭

등록 2015-01-01 18:31수정 2015-01-01 21:16

고명섭 논설위원
고명섭 논설위원
그리움은 보통 과거를 향하지만 미래를 향한 그리움도 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이다. 그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을 우리 근대시의 역사에서 가장 뚜렷한 이미지로 보여준 것이 신석정(1907~1974)의 시들일 것이다. “어머니/ 당신은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 / 멀리 노루새끼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그 먼 나라’를 반복해서 부르는 이 시에서 우리는 ‘먼 곳을 향한 그리움’의 생생한 사례를 만난다. 이 시의 풍경과 정취로 석정은 ‘목가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라는 시에서 목가적 서정은 한층 뚜렷해진다. 석정의 시는 손에 잡히지 않는 막연한 유토피아의 꿈을 애틋한 낭만주의 가락으로 노래하는 듯하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석정이 해방공간에서 썼던 시 13편이 무더기로 발굴됨으로써 석정 시의 해석 상황이 일변하였다. 이 13편은 나라의 장래를 놓고 좌우 세력이 격돌하던 급박한 시절에 쓴 시들이다. 그중 <젊은 군상>이란 시는 유진오·오장환·임화·김기림 같은 당대 시인들이 감옥에 갇히고, 테러를 당하고, 지하로 숨어드는 사정을 전하면서 “두더지가 되어도 테러를 만나도/ 총을 맞아도 좋다”고 선언한다. <오월이 올 때마다>에서는 “짓밟힌 국토에 새나라 서는 날”을 선창한다. 이 시 말미에 석정은 자신이 감옥에서 어린이날을 맞았음을 밝혀 놓았다. 이렇게 치열한 현실참여의식을 간직한 시들이 세상에 나옴으로써 목가시라는 규정으로 석정 시세계를 아우를 수 없음이 분명해졌고 또 그만큼 석정 시의 의미가 새로워졌다. “어둠은 아름다운 전설과 신화까지 먹칠하였습니다.”(<이 밤이 너무 길지 않습니까>) 1936년에 발표한 이 시의 ‘밤’이 그저 밤이 아니라 ‘시대의 어둠’임을 의심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면 이제 석정이 초기에 어머니를 부르며 노래했던 시들이 단순히 먼 곳을 향한 감상적 동경이 아니라 단단한 현실인식 위에 구축된 굳센 유토피아주의의 표현임도 확실해졌다고 할 수 있다. ‘먼 나라’는 엄혹한 시대의 압박 아래서 은유로 그린 새 나라의 꿈이었던 것이다. 그런 현실부정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문사들이 부역에 앞장서던 시절에, 석정이 일제와 타협하지 않고 창씨개명을 거부하며 고향 부안에 머물렀던 것이리라. 1960년 이승만이 쫓겨난 뒤에 참여시의 대명사 격인 김수영이 “우선 그놈의 사진을 떼어서 밑씻개로 하자”고 한 데 대해 석정이 “어찌 그 치사한 휴지가 우리들의 성한 육체까지 범하는 것을 참고 견디겠느냐”고 쓴 것이 난데없이 튀어나온 정치적 외마디가 아니었음도 새로 발굴된 시들은 알게 해주었다.

석정은 해방공간에 쓴 그 ‘위험한’ 시들을 누가 알면 안 된다는 듯 표지 없는 낡은 시집의 본문 여백에 적어놓았다. 그러나 그 시들은 책갈피 사이에서 조용히 잠만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석정의 목가시는 저항시, 참여시”라고 육십 몇 년째 아우성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저항문학이 김남주식 직설화법이어야만 할 이유는 없다. 시인 진은영이 평론집 <문학의 아토포스>에서 고백한 대로 ‘사회참여의식’이 1980년대식 ‘민중시’의 방식으로 나타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유토피아를 향해 켜 든 그리움의 촛불도 이 반유토피아적 현실에 맞서는 힘이 될 수 있다. 석정의 목가시들은 더러운 현실 너머 ‘저 먼 나라’에 대한 비전을 노래한다. 새해 첫날 석정의 그리움으로 불러본다. “어머니, 그 먼 나라를 아십니까?”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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