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호가 지그재그 운행을 하고 있다. 푸른색으로 도배된 선장실은 들쑤셔진 벌집이다. 들리는 소문도 흉흉하다. 말(馬)을 잘못 다루어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네요’라는 한마디 말에 일자리를 잃은 ‘최우수’ 공무원과 ‘우수’ 공무원 이야기. ‘십상시’, ‘7인방’ …… 소문은 눈덩이처럼 구른다
지난 스무해 동안 우리 마을에는 범죄가 없었다. 자물쇠 채우지 않아도 남의 집에 들어가 무얼 훔치는 사람도 없고, 경찰이 쫓아온 일도 없었다. 그러니 우리 마을 사람 쪽에서 보면, 경찰, 검찰, 법무부, 국가정보원, 국회, 헌법재판소 같은 데 들어가는 돈은 아까울 수밖에 없다. 왜 이것들까지 먹여살려야 하지?
가끔 학부모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물어본다. 어머니가 애 터지게 밥 먹어라 밥 먹어라 부르는데도 못 듣고 동무들과 실컷 놀아 본 적이 있느냐고. 그러면 사오십대가 넘은 이들은 거의 모두 손을 든다. 그 모습을 찍어 놓고 싶다. 한결같이 이를 하얗게 드러내고 입이 귀에 걸린 얼굴들이다. 왜 그렇게 구김살 없이 웃느냐고 물으면 행복해서란다. 댁의 아이들도 그렇게 자라고 있느냐고 물으면 겸연쩍어한다.
행복은 뒤늦게 돈 주고 살 수 없다. 애써 배워 익힐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려서부터 몸에 배어야 한다. 마음껏 밖에서 뛰놀면서 손발 놀리고 입 놀리는 가운데 가슴 깊이 스미는 감정이 행복이다. 그런데 이 빌어먹을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마음 놓고 놀 곳도 때도 없다. 머리만 굴려도 살 수 있다고 여겨 아이들을 네모난 방에 온종일 가두어 놓고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리고 별별 해괴한 교육이론을 들먹이면서 온갖 짓을 다해 아이들을 못살게 들볶는다.
아이들마저 불행으로 이끄는 이 망할 놈의 나라가 두해 전부터는 한술 더 떠서 망할 짓만 골라서 저지른다. 이 나라는 먹이고 재우고 입혀 주는 노동자 농민들을 제대로 돌본 적이 없다. 식량 자급률이 20%대에 머물고, 잡곡 자급률은 5%대에 못 미친다. 밀가루 자급률은 0.2%까지 떨어졌다. 땅도, 물도, 바람마저 썩어가 아이들에게 물려줄 것이 굶주림과 질병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지금 잘 먹고 잘사는 것들 눈에는 강 건너 불이다.
군대만 썩은 게 아니다. 입법, 사법, 행정 어느 곳을 둘러보아도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 누구를 위해서 헌법재판소가 있고 학교가 있고, 신문 방송이 있는가. 그렇잖아도 잘살고 있는 1%를 더 잘살게 하려고 나머지 99%를 쥐어짤 궁리만 하는 권력이 온 나라를 휘젓고 있다.
공무원 연금 개혁? 웃기는 짓이다. 공무원이 철밥통이라는 말, 정권 바뀌기만 기다리면서 복지부동한다는 말은 어제오늘 나온 말이 아니다. 누가 그렇게 만들었는가. 공무원이 사이에 들어 생겨나는 부정부패가 오늘까지 이어져오고 있다는 말도 맞다. 그러나 공무원 연금을 깎아서 나라살림 걱정을 더는 것보다 공무원들이 뒷돈을 챙기지 못하게 해서 나랏돈이 새는 것을 막는 게 더 먼저다. 뒷돈을 1000원만 받아도 목을 자르면 된다. 공무원 사회가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채워지면 정경유착은 저절로 없어진다. 이 일은 어렵지 않다. 공무원 노조를 법 밖으로 내칠 생각을 거두고 노동 삼권을 보장해 주면 된다.
공무원들을 윽박질러 길들이려고 들어서는 안 된다. 공무원 사회가 맑아지면 뒤로 새는 돈이 없어져서 따로 연금개혁을 하지 않더라도 재원 문제는 풀린다. 공무원 연금을 깎는 대신에 다른 연금들을 공무원 연금 수준으로 올리는 길은 왜 찾지 않는가. 돈이 없다고? ‘사자방’ 같은 데 낭비되는 돈, 아메리카합중국산 첨단 무기 사들여 전쟁을 부추기는 돈을 아끼면 그러고도 남을 만한 돈이 이 나라에 쌓여 있다.
김영란법? 겉으로는 그럴싸하다. 그러나 속 들여다보이는 법이다. 그 까닭은 이렇다. 첫째, 이 법은 국회의원들을 잠재적 범죄 집단으로 가정한다. 둘째, 돈 있는 놈만 입후보할 길을 터 준다. 셋째, 수틀리면 통치권자가 법무부를 앞세워 아무나 먼지 털어 범법자를 만들어서 입법부의 목을 조를 수 있다.
현 정부는 이런 말도 안 되는 법안을 국회에 들이밀면서 당장 통과시키라고 여당을 몰아세우고 야당 입에 재갈을 물리려 든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하기 전에 월남 이상재가 했다는 말이 생각난다.
“여섯 명만 목 자르면 되겠나?”(왕조시대 육판서를 갈아치우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다.)
“세 명만 자르면 됩니다.”(삼정승인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을 가리킨다.)
이상재에게 물었던 이가 그 삼정승 가운데 하나였다 한다.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딱 하나만!”
그렇잖아도 구린 정권이었다. “중앙선관위는 각 지역선관위가 개표도 하기 전에 개표 방송을 했고, 각 지역선관위는 개표 방송에 맞추어 개표 상황표 투표용지 교부수와 투표수를 조작했고, 총투표수를 맞추기 위해 선관위원장이 공표하지도 않은 유령 투표수를 임의로 넣었다 뺐다 하면서 투표수 총수치를 임의로 조정했다.”(시골목사 김후용이 <침몰하는 대한민국호>에 쓴 글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2012년 12월19일에 있었던 일이라 한다. 김 목사는 중앙선관위의 일사불란한 지휘로 온 나라에 걸쳐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 이루어졌다고 지금도 믿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이런 구설수를 안고 태어났다.
그로부터 만 2년 뒤인 2014년 12월19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날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조종’(弔鐘)이 울린 날이기에. 대한민국 헌법재판소는 이날 통합진보당을 해산하고, 현직 국회의원 다섯의 자격을 박탈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회에 대표를 다섯밖에 보내지 못한 정당이 그 힘으로 대한민국을 송두리째 뒤엎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아니, 대한민국호가 이렇게 허술하단 말인가. 그 배에 올라탄 선장과 승무원은 다 어디에 있는가. 같은 선실에 있던 그 많은 여당, 야당 의원은 무얼 하고 있었던가.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던 쥐새끼들처럼 우르르 떼 지어 먼저 탈출하지 않았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다면, 그 ‘구쾌의원’들은 모두 국회에서 몰아내야 한다. 나라를 지키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하는 것들이 나라의 꼭대기 선실을 차지하고 앉아 그렇잖아도 기우는 배를 더 빨리 뒤집히게 하는 꼴을 어찌 보고만 있을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호가 지금 세월호처럼 지그재그 운행을 하고 있다. 푸른색으로 도배된 선장실은 들쑤셔진 벌집이다. 들리는 소문도 하나같이 흉흉하다. 말(馬)을 잘못 다루어 ‘그 사람들 나쁜 사람들이라네요’라는 한마디 말에 일자리를 잃은 ‘최우수’ 공무원과 ‘우수’ 공무원 이야기. ‘찌라시’를 집 밖으로 빼냈다 해서 야단맞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의 유서 이야기. ‘십상시’, ‘7인방’ …… 소문은 눈덩이처럼 구른다. 어떤 재미동포는 문화체육관광부라는 곳에서 우수도서로 뽑힌 책 내용을 중심으로 콘서트를 했는데, ‘종북’으로 몰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고등학생이 던진 냄비폭탄 세례를 받았다는 이야기. 그 폭탄을 던진 학생은 윤봉길 의사에 버금하는 애국자로 떠받들린다는 이야기…….
“메리메리 쫑쫑, 해피해피 독독/ 잔치잔치 벌였네 파란 지붕 마당가에/ 이뻡 사뻡 불뻡 탈뻡 온 동네 똥개들이/ 진도깨 개엄 아래 비상 잔치 벌였네/ 진도가 앞장서서 컹컹 으르르릉/ 똥개가 덩달아서 끼깅끼깅 깽깽”
메리메리 크리스마스, 해피해피 누이여.
정말 개 같은 세상이다. 아니, 개한테 부끄러우니 개만도 못한 세상이라고 하자.
마지막으로 옛 소련 반체제 인사로 몰려 침묵을 강요당했던 한 시인이 했던 말을 여기에 옮긴다.
“누군가 바른말을 해야 할 때 입 다물고 있다면 그 침묵은 거짓말이다.” - 옙투셴코
윤구병 농부철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