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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박창식의 말과 소통] 영어강의 미친 바람

등록 2014-12-25 18:37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지난 18일 한겨레신문사 한겨레말글연구소가 ‘대학교육과 영어, 우리말’을 주제로 연 토론회에서 서울의 한 대학생이 요즘 영어강의의 놀라운 실상을 털어놓았다. 여기서 영어강의는 영어 관련 과목 강의가 아니라 일반 교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영어몰입교육을 뜻하는데, 최근 그 비중이 대학별로 전체 교과의 25~30%까지 늘고 있다. 문제는 과목의 특성과 학생, 교수의 수준을 무시한 채로 영어강의 자체가 목적인 듯이 미친바람이 부는 것이다.

가령 이 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는 ‘국어문법론’ ‘국어학강독’ ‘국어음운론’ ‘응용언어학’ 등 다섯 과목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한다. 이 가운데 ‘국어학강독’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강독하는 것인데, 한글의 창제 원리와 반포 목적을 영어로 배운다니 세종대왕이 기절할 노릇이다.

사학과에서는 ‘서양문헌강독’ ‘한국선사고고학’ ‘한국근현대사’ ‘미국역사와 문화’ 등 열 과목이 영어강의라고 한다. 서양 문헌 강독이나 미국 역사는 이해된다. 하지만 한국 근현대사까지 외국인이 영어로 쓴 교재를 갖고 영어강의로 진행한다면 역사관을 바로 세우고 전공 지식을 제대로 익힐 수 있겠는가.

미술 학과에선 ‘공공미술’ ‘판화’ 실기 과목을 영어로 하는데, 고등학생 때까지 우리말로 얼마든지 실기를 잘해온 과목을 갑자기 영어로 한다니, 요것이 미술 실기인지 영어학원인지 학생들이 헷갈리겠다.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같은 제2외국어 과목도 영어로 강의하고 있다. ‘국어문법론’은 주요 용어를 영어 파워포인트로 띄워놓기만 하고 과제와 발표, 시험까지 수업의 90%는 한국어로 이뤄진다고 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사례다.

대학은 영어강의 비중이 늘고, 영어논문 발표 건수가 늘어야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국제화는 대학의 서열을 매기는 잣대가 되고 있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평가지표로 영어 비중을 분별없이 높여 놓고 대학평가 사업을 하는 것도 왜곡된 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국제경쟁력은 필요하다. 특별한 몇몇 학과의, 수학 능력이 우월한 학생들은 ‘영어 환경’ 노출을 늘리는 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훨씬 많은 학생들은 영어강의 때문에 전공 이해도가 떨어지고, 영어 공부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교수들의 논문 쓰기도 일률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이공계나 자연계열은 몰라도 인문, 사회과학 분야라면 외국어보다는 모국어로 논문을 쓸 때 더욱 깊이 있게 연구를 진행하기 쉽다.

고대 로마는 그리스 학문을 그리스어 그대로가 아니라, 라틴어로 번역하여 받아들였다. 라틴어를 기반으로 학문의 꽃이 활짝 피고, 라틴어가 세계적인 학문어가 된 까닭이다. 일본은 영어강의, 영어논문 위주로 달려가지 않고 학문언어를 자국어로 번역해 사용하는 정책을 택했다. 그 결과 아시아 학술의 근거지가 되었으며 많은 노벨 학술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국가경쟁력을 높인다며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 리콴유는 뒷날 자서전에서 그것이 ‘큰 실수’였다고 고백했다. 학생들이 영어에 매달리다가 전공 학력이 전반적으로 떨어졌고, 영어를 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 사이의 세대간 계층간 갈등마저 심해진 까닭이다. 말레이시아는 2003년부터 초중고교 수학과 과학을 영어로 가르치다가 효과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2009년 이 정책을 포기했다.

대학교육과 언어의 문제를 국가 지도자들이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무분별한 영어 바람 탓에 학문어로서의 우리말이 위축되고 학문 경쟁력을 잃을 염려가 크다. 국제화를 이루고 문화의 힘을 기르며 국민들 사이의 격차도 줄이는 전략을 연구해야 한다. 대통령이 프랑스에 가면 프랑스어로, 중국에 가면 중국어로 연설하는 식으로 겉멋 부릴 때가 아니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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