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초반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의 법률고문을 지낸 존 딘은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의 핵심으로 지목됐다. 그러나 그는 미국 연방수사국(FBI)과 사법거래를 해, 닉슨 대통령 기소를 위한 증언을 해주는 대가로 형을 경감받는다. 1973년 6월 그는 상원의 워터게이트 청문회에 증인으로 섰다. 그의 증언은 닉슨 정권 내부의 첫 ‘반란’으로 엄청난 주목을 받았고, 닉슨 탄핵 쪽으로 여론을 움직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의 증언이 닉슨의 정치적 신뢰를 추락시키는 데엔 기여했지만, 닉슨을 기소하는 데엔 별 도움을 주진 못했다. 그는 수개월 전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를 모의하기 위해 열렸던 백악관 참모회의 내용을 고스란히 밝혔는데, 그의 증언 중 상당 부분이 과장됐고 사실과 다른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의심이 많았던 닉슨은 집무실에 몰래 녹음기를 설치해뒀다. 청문회 과정에서 이 사실이 처음 알려졌고, 나중에 녹음과 증언을 비교해보니 존 딘의 발언엔 사실과 거짓이 묘하게 혼재되어 있었다.
사실을 얘기해도 닉슨 기소엔 아무런 문제가 없을 텐데, 존 딘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이 사안은 심리학의 좋은 연구 대상이 됐다. 학자들은 그가 의도적인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기억이 자기중심적으로 ‘재구성’됐다고 분석했다. 자기에게 유리하거나 호감이 가는 부분은 중요성을 더 과장하고, 불리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부분은 망각하거나 축소 기억했다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일수록, 자존심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그래서 발달심리학자 윌리엄 슈테른은 “기억을 믿지 말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과거 회귀형 지도자다. 인사든 정책결정이든 그 밑바닥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절의 청와대 경험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의 수십년 전 기억은 과연 정확한 것일까? 어쩌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해 지금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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