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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니르자 바노트의 희생 / 김양희

등록 2014-12-14 18:41수정 2014-12-14 20:24

1986년 9월5일, 인도 뭄바이에서 출발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가려던 팬암 항공 73편이 중무장한 4명의 리비아 테러리스트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항공기가 중간 기착지인 파키스탄 카라치의 진나공항에 내리자마자 사무장 니르자 바노트는 미국인 조종사와 부조종사 등을 기내에서 탈출시켰다. 항공기 이륙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후 승무원을 비롯한 379명의 탑승객을 통솔할 책임자는 바노트가 됐다. 바노트와 승무원들은 모두 인도 출신이었다.

진나공항에 발이 묶인 납치범들은 미국인 승객을 가려내기 위해 승무원들에게 탑승자 여권을 수거하라고 명했다. 당시 비행기에는 41명의 미국인이 타고 있었지만 바노트의 지시로 승무원들은 그들의 여권을 몰래 의자 밑에 숨기거나 쓰레기통에 버렸다. 17시간 뒤 파키스탄 특수부대가 기내 진입을 시도하자 납치범들은 총을 발사하고 수류탄을 던지며 극렬히 저항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바노트는 비상구를 열어 승객들을 탈출시켰다. 자신이 가장 먼저 내릴 수도 있었지만 끝까지 남았다. 마지막까지 어린이 승객 셋을 보호하려던 바노트는 23번째 생일을 불과 25시간 남겨놓고 총탄에 쓰러졌다. 당시 사망자는 바노트를 포함해 22명. 바노트의 희생이 없었다면 사망자는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었다. 바노트는 사후에 인도 정부로부터 ‘아쇼카 차크라 상’을 최연소로 받았다. 용감한 시민에게 주는 인도 최고 권위의 상이다.

세계 항공사고 정보를 모아둔 ‘플레인크래시인포’를 보면, 10명 이상 탄 항공기 사고 때 탑승객 평균생존율은 20~30%에 불과하다고 한다. 하지만 비상시 승무원들의 기지에 따라 생존율은 더 높아질 수 있다. 1986년 팬암이 그랬고, 지난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착륙 도중 사고를 당한 아시아나가 그랬다. 항공기 승무원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생각처럼 마카다미아 너츠 서비스를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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