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타임스는 중국이든 미국 또는 어떤 나라든 그 나라 정부의 요구에 맞춰 기사를 쓸 생각이 없다. …(중략)… 기자들에게 정부의 입맛에 맞는 기사를 쓰도록 요구하는 것은 권력자와 무언가 감출 것이 있는 사람들만 보호할 뿐이다. 세계의 지도국이라고 생각하는 자신 있는 정부라면 진실한 취재와 비판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11월1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베이징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기자들과 한 일문일답에서 중국 지도부의 부패 사건을 보도한 <뉴욕 타임스> 기자의 비자 거부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자동차가 고장 났으면 차에서 내려 무엇이 잘못됐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고 뉴욕타임스에 책임을 돌리는 답변을 했다. 이에 타임스는 다음날 ‘시 주석에 대한 답변’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위와 같은 의견을 밝혔다.
“불구속 기소는 한국은 물론 일본을 비롯한 민주주의 국가 각국이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는 언론의 자유에 대한 중대하고 명백한 침해이다. …(중략)… 보도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자유롭고 건전한 논쟁을 벌임으로써 민주주의는 단련된다. 한국 당국이 한시라도 빨리 민주주의 국가의 대원칙으로 돌아올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이것은 10월8일 한국 검찰이 세월호 침몰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라진 7시간’과 관련한 칼럼을 쓴 일본 <산케이신문>의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자, 당일 구마사카 다카미쓰 산케이신문사 사장이 발표한 성명의 일부 내용이다. 산케이는 이에 그치지 않고 자사의 누리집 특집란에 ‘산케이 전 서울지국장 재택(불구속) 기소’라는 항목을 만들어 놓고 세계 곳곳에서 나오는 관련 기사를 긁어모아 전하고 있다. 마치 자신들이 언론자유 분야에서 뉴욕타임스와 동격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이번 사건을 자사의 선전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
물론 뉴욕타임스와 산케이를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비교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다. 1971년 베트남(월남)전과 관련한 미국 국방부 비밀문서를 폭로한 기사 하나만으로도 세계 언론사에 불멸의 족적을 남긴 뉴욕타임스와, 일본 황실과 관련해서는 찍소리도 못하면서 이웃 나라와 갈등을 조장하는 데는 이골이 난 산케이를,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같은 수준의 신문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제3자의 관점에서 볼 때는 중국에서의 뉴욕타임스나 한국에서의 산케이신문 모두 해당국 정부가 꺼리는 보도를 함으로써 핍박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미국·유럽의 유력 신문이나 ‘국경 없는 기자회’같이 권위 있는 언론단체가 일제히 한국 정부를 비판하고 있는 것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상대국 원수를 폄하하려는 ‘의도’(?) 아래 사실관계를 제대로 확인하려는 노력도 없이 저질 기사를 써 갈긴 기자를 ‘언론자유 투사’로 만들어준 정부 당국의 책임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를 코미디의 소재로 삼아도 좋다’고 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량이 아쉬운 대목이다.
11월27일 가토 전 지국장에 대한 첫 재판이 시작되면서 한국에서의 언론자유 논쟁뿐 아니라 한-일 사이의 갈등도 다시 증폭되고 있다. 이렇듯 사태가 불행하고 안타까운 방향으로 흐르고 있지만, 그래도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 전진할 수 있다.
첫째, 이참에 보도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언론시장의 자율과 자정에 맡긴다는 원칙을 세울 필요가 있다. 권력의 섣부른 개입은 언론자유뿐 아니라 나라의 품위도 해친다는 걸 이번 사태는 잘 보여준다. 둘째, 언론도 상대국의 예민한 사안에 대해 더욱 신중하고 숙고하는 자세로 접근해야 함을 깨달아야 한다.
언론자유는 국가가 좌지우지하는 전유물도 아니지만 언론인의 노력 없이 거저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더욱 중요한 것은 정부의 노력일 것이다. 이 점에서 대니얼 모이니핸 전 미국 상원의원의 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떤 나라의 신문들이 좋은 뉴스로만 채워져 있다면, 그 나라의 좋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모두 감옥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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