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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역사의 뒷걸음질 / 고영재

등록 2014-11-27 19:19수정 2014-11-27 22:09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MBC 인사 사태’ 전말 궁금한데 한겨레도 해소시켜주지 못해
민주적 장치서 권력의 흉기로 돌변한 ‘방문진’ 깊이 다뤄봐야
‘엠비시(MBC) 사태’의 전말이 참으로 궁금했다. 듣도 보도 못한 일이 공영방송 엠비시에서 벌어진 터다. <한겨레>도 그 궁금증을 풀어주지 못했다. 그 사실과 노조의 반발을 ‘덤덤하게’ 전했을 따름이다.

엠비시는 최근 교양제작국을 전격적으로 해체했다. 그 심각성은 최근 발표된 엠비시구성작가협회의 성명에 담겨 있다. “공공재인 전파를 빌려 사용하는 공영방송 엠비시의 공익성을 담보해온 것은 다름 아닌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었다. 교양제작국 해체는 권력에 비판의 칼을 세우고 감시 기능을 해온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역할을 거세하겠다는 뜻이다.” 엠비시 안에 남아 있던 권력 비판의 싹을 도려내는, ‘길들이기 작업’의 완결판이라는 시각의 표현이다. 2012년 엠비시는 이명박 권력과의 마찰로 ‘170일 파업’이라는 호된 홍역을 치렀다. 회사 쪽은 이에 <피디(PD)수첩> <남극의 눈물> 등을 제작하던 시사교양국을, 시사제작국과 교양제작국으로 분리하는 강수로 맞선 바 있다.

조직 개편에 따른 인사는 그 의구심을 증폭시킨다. 피디와 기자들을 대거 ‘유배’ 보내거나 ‘교육명령’을 내렸다. 그 ‘이상한 인사’ 대상자들은 사회고발 프로그램을 제작하거나 경영진 횡포를 비판해 왔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그들은 대체로 자신이 일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갖췄다는 평판을 안팎에서 받아 왔다. ‘명백한 보복인사’라는 노조의 비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황우석 논문 조작사건’을 밝힌 피디는 신사업센터로, 피디수첩 ‘광우병’ 편을 제작했던 피디, 이명박 정부 ‘민간인 사찰’을 파헤친 피디는 프로그램 제작과 무관한 부서로 보냈다. 한국피디연합의 작품상, 방송통신위원회가 선정한 ‘이달의 좋은 작품상’ 수상자 등에겐 ‘교육명령’이 떨어졌다. 이들은 ‘가나안 농군학교’에 입소할 예정이었다. ‘삼청교육대’를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교육명령은 가나안 입소 직전 취소됐다. 엠비시 내부에서는 비판적인 여론의 뭇매를 견디지 못한 탓으로 해석한다.

무한경쟁 시대에 회사가 경쟁력 출중한 일꾼들을 내치다니. 괴이한 일이지만, 곡절이 있을 터. 회사의 해명을 신문에서 읽었다. “신성장 동력의 발굴과 역량 강화를 위해 신설된 조직을 중심으로 그에 필요한 인력을 적재적소에 배치했다.” (‘가나안 농군학교’에 대해) “오랜 기간 우리 사회 교육기관으로 인정받아온 곳이며, 교육내용도 우리 사회 가치를 고양하는 등 좋은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밀실에서 졸속’으로 조직 개편 작업과 인사가 이루어졌다는 비판도 파다하다. 필자도 엠비시 사장의 설명이 듣고 싶어졌다. 비서실장에게 ‘5분 통화’ 주선을 부탁했다. 사장실 문턱은 역시 높았다.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 “홍보국이 따로 있다. 그 국장에게 들어 보라.”

엠비시 사태는 여러모로 충격적이다. 우선, 거대한 쓰나미가 몰려오는 형국을 너나없이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릇 조직의 우두머리는 조직의 활력을 높이는 데 인사를 활용하는 법. 엠비시는 그 길을 거부하고 거슬러가는 길을 선택했다. ‘보복 인사’, 유능한 기자·피디들에게 재갈을 물리고도 제대로 된 방송이 가능하겠는가. 그런데도 엠비시 내부는 잠잠하다. 바깥쪽에서는 이를 걱정하는 소리가 들린다. “현관 앞 농성 같은 최소한의 캠페인조차 없다. 노조가 저항할 의지도, 기력도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 아닌가.”

그 까닭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최근 2년 남짓 동안 엠비시에선 해고와 징계, 부당한 전배 등 비상식적인 인사가 되풀이됐다. 그것도 권력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숫자는 연인원으로 200명에 가깝다. 해고 무효, 업무방해, 손해배상 등 노사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소송만 30건에 이른다. 해직자는 아직 7명이나 남아 있다.

마이크를 쥐고 방송하는 현장 기자는 100여명. 그 가운데 절반이 넘는 기자들이 ‘외인부대’다. ‘170일 파업’ 이후 지속적으로 충원된 대체인력이 그들이다. 공영방송의 몰락을 걱정하던 핵심인력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신사업단에서, 수원지사, 인천지사에서 ‘경영합리화’ 사업에 열중이다. 회사 내부엔 조직이 철저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절망적인 분위기가 감돈다.

‘혁신’을 외치는 정치권도 중대한 사태를 모른 체 외면한다. 그들이 왜 혁신의 대상인지, 국민들로부터 지탄받는지를 입증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170일 파업’을 푼 열쇠는 박근혜 대통령(당시 새누리당 대선주자)을 포함한 여야의 ‘약속’이었다. 그러나 누구는 대통령에 당선된 뒤 마음이 바뀌었고 야당은 무기력했다. ‘공정방송위원회’ 구성 등 여야 합의 사항은 실천되지 않았다. 시민들이 무관심한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엠비시 사태는 또한 ‘민주적 절차나 제도’의 허구성에 대한 성찰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엠비시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는 군부독재 청산의 상징물로 첫발을 내디뎠다. 방문진의 출범은 청와대가 장악하고 있던 지배권을 민간에 되돌려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방문진은 엠비시 사장을 선임하고 경영을 관리·감독하는 특별법인이다. 1988년 방문진 체제가 새 출발할 때 “드디어 공정한 방송, 자율성이 보장된 공영방송 시대가 열렸다”는 환호의 소리가 높았던 것도 사실이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권력 의지에 따라 민주적 장치는 흉기로 돌변하는 법. 방문진을 운영하는 이사진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임명한다. 이사진 9명은 청와대와 여야가 사이좋게 3명씩 추천하고 있다. 그 이사진이 사장을 임명하고 조직의 운명을 결정한다. 문제는 그 이사진의 자율성, 독립성이다. 그 위에는 보이지 않는 힘, 대통령이 군림하고 있다는 점이다. 엠비(MB) 시대에 이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눈치 보기는 더욱 노골화되고 있다. 공든 탑 쌓기는 어려워도 이를 허물어뜨리기는 순간인 법. 박정희 시대 철권통치시대의 방송 장악 판박이를 40년 뒤 우리는 다시 보고 있다.

역사 발전의 궤적이 직선이 아니라는 데 서운해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 언론 민주화 역사 흐름을 거역하는 엠비시, 민주 체제를 뒤흔드는 사태 앞에 놀라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세태가 서글프다. <한겨레>까지 그 세태에 박자를 맞추는 듯하다니.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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