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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코무덤과 평화헌법 / 고명섭

등록 2014-11-20 18:36

고명섭 논설위원
고명섭 논설위원
코무덤은 일본 옛 도시 교토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모신 신사 맞은편에 있다. 코무덤을 만든 사람이 바로 그 신사의 주인공, 임진·정유 양란을 일으킨 도요토미다. 1597년 재침략한 도요토미는 조선인을 잡아 머리 대신 코를 베어 보내라고 했다. 일본군은 그해 8월부터 두어 달 동안 닥치는 대로 조선 군사와 백성을 잡아 죽이고 코를 베어내 교토로 보냈다. 그 코가 12만6000개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난 13일 오전 10시 이 코무덤 앞에서 조선인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열렸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이사장 한양원)가 2007년부터 해마다 여는 위령제다. 여덟 번째를 맞은 이날 위령제에는 교토·오사카 민단 동포 200여명이 함께했다. 동아시아 평화를 연구하는 호세이대학 스즈키 야스시 교수와 학생들도 참관해 위령제 전 과정을 녹화했다. 커다란 봉분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제주 한양원 이사장이 첫 술잔을 올렸다. 남원국립국악원 무용단이 원통하게 죽은 넋을 달래는 살풀이를 추었다. 구슬픈 상엿소리가 11월의 서늘한 공기를 뚫고 퍼졌다. 장내가 숙연해졌다.

일본 한복판에서 열린 조선인 희생자 위령제를 보며 일본의 어제와 오늘을 떠올렸다. 400여년 전 조선을 유린했던 일본은 300년 뒤에 다시 한반도를 침탈했다. 이윽고 세계를 상대로 하여 전쟁을 벌이다 원폭이라는 또다른 참혹한 야만을 겪고 손을 들었다. 패전 후 일본은 민주국가로 옷을 갈아입었다. 그 일본을 상징하는 것이 ‘평화헌법’이다. 일본은 평화헌법을 지침으로 삼아 50여년 동안 평화주의 노선을 지켰다. 그 평화주의가 군국주의 세력의 압박 속에 일대 위기를 맞았다. 올해 아베 신조 정권은 ‘집단적 자위권’이라는 이름으로 전쟁할 권리를 헌법적 권리로 선포했다.

일본 헌법이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첫 번째 근거는 헌법 9조에 있다. 헌법 9조는 전쟁을 영원히 포기하고 무력을 보유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헌법 전문에선 “정부의 행위에 의해 다시 전쟁의 참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일본 국민의 반전평화 결의를 밝혀 놓았다. 일본 보수우익은 이 평화헌법이 점령군 사령부의 강요로 작성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학자들의 연구를 보면 시데하라 기주로 당시 총리를 비롯해 일본 안 평화주의자들의 반전 의지가 헌법 전문과 9조로 영글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 평화주의자 우치무라 간조는 일본이 팽창주의 노선을 달리던 1926년에 이렇게 경고했다. “일본은 대만과 조선과 남양군도를 획득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전세계의 사랑을 잃어버렸다. 이제 일본 국민은 두려워하고 싫어하는 대상이 되었다.” 아베 정권 아래서 일본은 다시 우치무라가 걱정했던 그런 혐오스런 나라가 돼가고 있다.

다행인 것은 일본 국민의 60% 가까이가 평화헌법 개정에 반대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손잡아야 할 대상은 한-미-일 삼각동맹의 군사주의 일본이 아니라 바로 이 평화를 사랑하는 시민세력이다. 교토시가 2003년에 세운 코무덤 안내판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히데요시가 일으킨 이 전쟁은 한반도 민중들의 끈질긴 저항에 패퇴함으로써 막을 내렸으니, 전란이 남긴 이 무덤은 조선 민중의 수난을 역사의 유훈으로서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도요토미 침략전쟁의 야만성을 조선 민중의 처지에서 정직하게 고발한 안내판이다. 진정한 연대는 고통받은 약자의 관점에 설 때 가능해진다. 위령제에서 한양원 이사장은 “전쟁의 상극시대를 끝내고 평화의 상생시대를 열자”고 역설했다. 코무덤은 잊어서는 안 될 수난의 역사를 상기시킴과 동시에 한·일 시민이 함께 만들어가야 할 공존의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곳이다.

고명섭 논설위원 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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