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중앙일보>의 배명복 논설위원은 올해 초 박근혜 정부 1년을 맞아 열린 한 외교안보정책 평가 세미나에 참석해 ‘동아시아 패러독스’(경제적으로는 상호의존성이 크지만 정치·군사적으로는 갈등이 존재하는 상황을 뜻함)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박근혜 패러독스’도 존재하는 것 같다는 말을 한 바 있다. 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짠 데 견줘 일반 국민의 평가는 후한 모순된 상태를 가리켜 쓴 조어이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3종 세트로 이뤄진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비판과 실망의 소리가 본격적으로 분출하기 시작했다. ‘간판은 그럴듯한데 팔 물건이 없다’(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거나 ‘1층 없는 2층집 짓기’(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라는 통렬한 비판은 그런 인식의 반영이다. 이제까지 전문가들의 이런 목소리가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했던 것은 일반 국민과의 인식 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시아 패러독스는 그대로인데 박근혜 패러독스는 나쁜 방향으로 해소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박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이 점차 전문가 쪽으로 근접하고 있는 탓이다. 이상일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3일 국회 대정부질문 때 공개한 외교·국방·통일부와 국회 출입기자 111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조사에서 기자들은 박 정부의 외교·안보·통일 정책에 대해 54.3%(58명)가 부정적으로 평가했고, 긍정 평가는 22.5%(25명)에 불과했다. 기자들이 전문가와 일반 국민을 매개하는 노릇을 하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분위기가 조만간 국민 속으로 퍼져나갈 것이라고 해도 지나친 추측이 아닐 것이다.
남북관계의 악화 속에서 북-미, 북-일, 중-일 등이 각자 실리 차원에서 활발하게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는 것도 박 정부의 외교안보 담당자들을 더욱 궁지에 몰아넣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 주권의 고갱이인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을 사실상 영구적으로 미국에 갖다 바친 행위만큼 용서받지 못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의 두 가지 사례는 전작권 상실이 국민의 생명과 나라의 위엄에 얼마나 결정적인 해악을 끼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나는 임진왜란 때의 일이다. 임진왜란을 전공한 사학자 한명기 명지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임란 막바지인 1596년 무렵 경상도 해안에 주둔 중인 왜군이 인근의 조선인 마을을 습격해 행패를 부리는데 조선군은 이들을 뻔히 보고도 제재할 수 없었다. 작전권을 틀어쥔 명군 지휘부의 심유경이 왜군에게 신분을 보장하는 표첩을 발행해주고 조선군이 이들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1990년대 말 제네바에서 열린 남-북-미-중 4자회담 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했을 때 직접 겪었던 일화다. 당시 북한 대표는 회담 자리에 우리 대표가 앉는 것은 인정했지만 대화 때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미국 대표만 상대했다고 한다. 작전권도 없는 나라와 평화체제 구축이나 군사적 긴장 완화와 같은 얘기를 할 수 없다는 뜻으로 일부러 외면한 것이다.
‘안보 보수’는 전작권 회수가 곧 한-미 동맹의 파기이고 ‘100% 자주론’인 양 몰아붙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현실세계에선 동맹이라고 해도 100%의 동맹, 자주라고 해도 100%의 자주가 존재할 수 없다. 보수 진보와 관계없이 자주와 동맹의 적절한 배합을 통해 나라의 안전과 번영을 꾀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현명한 방책이다. 다만, 그 배합에서 51%의 권리를 누가 행사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에 따라 주권국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갑과 을이 합작회사를 세우면서 서로 경영의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해 51%의 주식을 확보하려고 애쓰는 것과 같은 이치다.
51%의 주권 행사마저 포기한 채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의 주역을 자임하는 일이야말로 또 하나의 ‘박근혜 패러독스’임을 그분들은 알고 있는지나 모르겠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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