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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무상급식은 네 공약, 무상보육은 내 공약 / 권태호

등록 2014-11-09 18:28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이 9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에 대한 청와대의 입장을 밝혔다. “누리과정(무상보육)은 무상급식과 달리 유아교육법 등에 따라 반드시 편성해야 하는 지자체나 지방교육청의 의무다. 반면 무상급식은 법적 근거 없이 지자체와 교육청 재량에 의해 하도록 돼 있는 사업이다. 무상급식은 각 지자체와 교육청이 과다하게 편성하고 집행했다. 무상급식은 (대선) 공약이 아니다.”

여야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을 놓고 한바탕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이전의 복지논쟁과 달리 여당은 무상급식을, 야당은 무상보육을 공격 포인트로 정하고 있다는 점이 도드라진다.

무상급식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학생 누구나 무료로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이고, 무상보육은 0~2살 영유아 보육료 지원과 3~5살 유치원·어린이집 비용 전액지원(누리과정)을 말한다.

지금 여야간 다툼을 보면, ‘아이들 밥 먹이는 게 더 중요하냐, 미취학 아동 보육이 더 중요하냐’는 정책 우선순위 논쟁도 아니고, ‘부자들에게까지 예산 지원을 해줘야 하느냐’는 보편복지 논쟁과도 다소 거리가 있다. 단순화시키면 ‘네 공약, 내 공약’이라는 저급한 다툼으로 변질되고 있다.

비용으로 따지면, 올해 무상급식 예산은 2조6568억원이고, 무상보육은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한 0~2살, 5살 등의 무상보육을 제외한 이른바 박근혜 대통령 공약인 ‘누리과정’(3~5살) 예산만 3조4156억원이다.

정치권 논쟁은 늘 수단과 목적이 바뀐다.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은 ‘목적’이 아니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모두 아이들의 복지 향상, 여성의 사회참여 지원 등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세계 각국에서 복지 논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처럼 여야가 각자의 영토 하나씩을 지키겠다며 이런 논쟁을 벌이는 곳은 없을 것 같다. “내 공약은 이것이고, 그건 내 것 아니고”라는 식으로 말하는 대통령이나 총리도 없을 것 같다.

이런 논쟁이 벌어진 건 2년 전 티브이 토론회에서 “무슨 돈으로”라고 묻자 “내가 대통령 되면 다 할 수 있어요”라고 답할 때부터 예고된 것이다. 지난해 국세수입 부족분이 8조5000억원이다.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0%로 잡았는데, 결과는 3.0%여서 세수가 줄어들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국세수입 부족도 최대 10조7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불요불급한 예산을 줄이고,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증세 없는 복지가 가능하다는 2년 전 약속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자,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다툼을 조장했다.

미국도 무상급식을 않는다. 독일도 무상보육을 않는다. 소득에 따라 급식료를 내고, 소득에 따라 보육료를 낸다. 하지만 이를 보편복지를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삼는다면 저급한 논쟁을 더욱 저급하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해 덴마크 출장을 다녀온 적이 있다. 코펜하겐 거리에서 두 가지에 놀랐다. 마치 10년 전 중국처럼 자전거 부대가 엄청나게 많고, 시민들의 옷차림이 너무 수수했다. 덴마크의 1인당 국민소득은 6만달러로 우리나라(지난해 2만4329달러)의 2.5배다. 덴마크의 한 기업체 간부에게 이 이야기를 했더니, “심성이 검소해서 그런 게 아니고, 돈이 없어서 그렇다”고 말했다. 연봉의 반을 세금으로 내고, 부가세가 높아 물가도 비싸, 쓸 돈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노르웨이는 더해 나 정도 벌면 60%를 세금으로 낼 거다. 물가도 비싸 노르웨이에 놀러 갈 땐 도시락을 싸서 간다”며 웃었다.

‘복지’는 공짜가 아니다. 무상급식, 무상보육, 보편복지 논쟁이 저급한 정쟁이 아니라, 복지와 조세 정책 전반에 대한 우리 사회의 고민으로 이어져야 할 것이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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