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국제부장
1989년은 기묘한 한 해였다.
봄부터 중국 베이징 천안문광장에서 개혁을 요구하던 학생, 시민들의 시위가 6월3일 밤부터 다음날 새벽 사이에 피로 물든 채 진압됐다. 바로 그날(6월3일) 이란 테헤란에선 20세기에 종교 교리에 따라 통치되는 국가를 만들고 미국에 맞섰던, 이슬람혁명의 지도자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세상을 떠났다.
11월9일 동서 베를린을 가르며 냉전의 상징으로 서 있던 베를린장벽이 무너졌다. 이미 민주화 요구 시위에 밀려 사회주의통일당(공산당) 서기장 에리히 호네커가 10월18일 사임한 상황에서, 이날 “동독 주민들이 당장이라도 자유롭게 서독으로 갈 수 있다”는 한 고위 간부의 발표 실수에서 촉발된 베를린장벽 붕괴는 독일 통일, 소련 해체, 사회주의권 붕괴라는 역사의 급류로 이어졌다.
승리자들의 환호가 세계를 뒤덮었다.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투쟁이 자유주의의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고, 그 상징인 미국의 인도 속에 인류는 더 이상 투쟁이 필요 없는 진보의 정점에 달했다는 ‘역사의 종언’ 선언이 요란했다. 유일 초강대국이 된 ‘미국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란 포고령이었다.
25년 뒤, 세계는 ‘역사 종언’의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
천안문광장에서 해결되지 못한 과제는 홍콩에서 또 다른 모습으로 분출했다. 이란 혁명에서 표출된 중동의 개혁 열망과 서구 패권에 대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고, 이란-이라크 전쟁을 부추기고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중동 정책은 ‘칼리프 체제’의 이슬람국가(IS)를 탄생시켰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시장과 자본의 천하에서 국가는 부의 재분배, 복지의 역할을 포기하고, 탈규제, 민영화, 탈산업·금융화, 탈복지 작업을 부지런히 벌여왔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과 카를로 보르도니는 <위기의 국가>에서 현재의 상황을 1930년대 대공황보다도 훨씬 심각한 “출구를 찾을 수 없는 위기”로 규정한다. 대공황의 위기 속에서도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지닌 강한 국가가 존재했기에 해법을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국가의 기능을 초국가적 자본과 기술에 넘겨버리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통치하는 ‘국가 없는 국가’의 시대다. 산업혁명 이후 300년 넘게 근대국가가 국민에게 약속했던 안전과 평화, 일자리와 복지의 의무는 내팽개쳐지고 있다.
한국의 현실이야말로 ‘위기의 국가’의 생생한 표본이다. 구할 수 있던 세월호의 304명을 수장시키고도 책임지지 않는 국가, 각자 빚내서 집 사는 것을 ‘경제 살리기’ 해법으로 내놓는 국가, 대통령이 규제를 무조건 풀라며 장관들을 다그치면서 기업들 맘대로 하라는 국가, 공공의료를 내팽개치고 의료영리화를 밀어붙이는 국가, 군사적 충돌 위험에도 전단 날리기를 수수방관하는 국가, 이런 비겁한 실상을 은폐하기 위해 감시체제 구축엔 더욱 힘을 쏟는 국가….
억압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무능 국가의 실상은 ‘갑오국치일’이라고 불러야 할 지난 24일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포기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한 해 35조7000억원이 넘는 국방예산을 쓰면서도 전시에 스스로 군대를 지휘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군대와 국가는 주권 포기 세력이다. 국민·영토·주권을 핵심으로 하는 근대국가의 정의에서 보면 스스로 국가의 한 축을 무너뜨린 사건이다. 게다가 전작권을 되찾아 가라는 미국 의회 등을 설득하기 위해 한국은 올해 들어 F-35 전투기와 글로벌호크 등 미국 무기를 대량 구매하기로 했고, 여기에 들어가는 국민의 세금 10조원은 고스란히 미국 군산복합체로 흘러들어간다. 이에 대한 책임을 똑바로 묻고 바로잡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책임 국가’의 길로 계속 가게 될 것이다.
박민희 국제부장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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