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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준만 칼럼] 지방분권 사기극

등록 2014-10-19 18:43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은 지방분권과 자치 강화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의 소방 사무도 지자체에 속해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광역단체에 소속된 4만 소방직 공무원의 국가직 전환 요구에 대해 나온 반대 논리 가운데 하나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부의 한심한 대응을 지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나라인가”라고 개탄했는데, 이 반대 논리는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라는 확신마저 갖게 만든다. 국민을 상대로 조직적인 사기를 치는 정부를 가진 나라를 나라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왜 사기인가?

20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지방자치는 여전히 ‘2할 자치’에 머무르고 있다. 지자체 세입의 국세와 지방세 비율이 8 대 2다. 지방 주민들은 지역에 기업이 많이 유치되면 지역발전이 잘되는 줄로 알지만, “재주는 지방이 부리고 돈은 중앙이 먹는” 비극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다. 세금 감면과 복지 확충의 생색은 중앙이 내고, 지방은 그 부담을 감내하느라 골병이 들고 있다.

완전한 지방분권은 시기상조인가? 좋다. 그럴 수도 있겠다. 지방분권을 천천히 하자는 주장에 기꺼이 동의하련다. 중앙과 지방을 나누지 말고 사이좋게 온 나라가 잘되게끔 애써보자는 말에도 수긍하련다. 단 조건이 있다. 권력과 금력을 중앙이 계속 장악하겠다면, 올바른 배분, 즉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 아니면 적어도 중앙이 지방을 상대로 사기는 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그간 중앙은 지방을 상대로 어떤 짓을 해왔던가? 국민 행복의 핵심이라 할 안전과 복지엔 돈이 많이 들어간다. 중앙은 돈줄은 놓지 않고 틀어쥐면서 안전과 복지를 지방에 떠넘기는 잔꾀를 부렸다. 그것도 지방분권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말이다. 이른바 ‘지방분권 사기극’이다. 돈이 많이 들어가는 일은 지방분권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돈이 많이 생기는 일은 지방분권을 결사반대하는 짓을 천연덕스럽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지방분권 사기극의 대표작이라 할 복지분권 사기극을 보자.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지방분권이란 미명 아래 빈곤층, 노인, 장애인 등에 대한 순수 복지사업 67개를 몽땅 지방에 이양했다. 그 대신 지방에는 담배소비세가 중심이 된 ‘분권교부세’를 만들어 주었는데, 이게 기막힌 사기술이다. 이후 5년간 분권교부세 수입은 연평균 8.7% 증가한 반면, 복지비 지출은 고령화 가속화 등으로 연평균 18%씩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홍철 대구경북연구원장은 <지방 보통시민이 행복한 나라>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악한(?)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분권교부세’란 명분으로 복지사업을 지방에 넘기는 술책에 노무현 대통령은 ‘분권’이란 이름만 보고 찬성하였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지방공무원들은 교부세 늘려준다고 하니,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고 덥석 복지사업을 받았던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앙정부는 해도 너무한다.”

감당할 수 없는 복지비용 때문에 지방재정은 파탄 지경에 이르렀고, 그로 인한 혼란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안전도 마찬가지다. 일부 지역 소방관들은 면장갑을 끼고 화재진압에 나설 정도로, 최악의 조건에서 혹사당하고 있다. 차라리 솔직하게 “돈 쓸 곳이 많으니 안전은 뒷전으로 미루자”고 말하면 좋겠는데, 중앙정부는 입만 열면 ‘안전’을 무슨 신앙 구호처럼 외친다. 그러면서 그런 참담한 현실은 외면하고 있으니, 이게 사기극이 아니면 무엇이 사기극이란 말인가.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이념이나 정치적 노선 문제가 아니다. 법과 제도의 문제도 아니고, 잘살고 못살고의 문제도 아니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 바로 이게 모든 문제의 근원이다. 중앙정부는 지방분권 사기극을 즉각 중단하라!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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