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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시민편집인의 눈] 혁명의 시대 / 고영재

등록 2014-09-25 19:59수정 2014-09-25 21:32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추석연휴, 5일에 배달된 6일치 신문…편법 발행에 독자 항의 적어
이는 한겨레에 언론혁명과 사회혁명을 동시에 요구하는 독촉장
<한겨레>가 의미심장한 사고를 쳤다. 독자들은 지난 5일 이틀치 신문을 한꺼번에 받아보았다. 9월5일치와 6일치가 한날한시에 발행된 것이다. 5일치 1면에는 짧은 알림판이 실렸다. ‘한가위 연휴 관계로 토요판 특별호를 하루 일찍 찍어 금요일치와 함께 배달합니다.’ 세계 언론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사건’이었다.

사건의 파문은 요란하지 않았다. 상당수 독자들은 사건 자체를 인식하지 못했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으로 보인다. ‘한가위 황금 연휴’ 닷새 휴가를 앞두고, 들뜬 분위기 탓도 있었다. 27년째 한겨레를 구독하는 한 창간 독자도 너그럽게 받아들였다. “전례 없는 일이라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기자들도 고향 찾고, 선조 성묘도 해야겠지요.”

<한겨레> 기자들도 ‘도발적인’ 시도에 크게 저항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방침을 결정한 편집회의에서의 반론은 미약했던 것으로 들었다. 이 결정을 통보받은 일선 취재 기자들도 내심 ‘흔쾌히’ 받아들인 것으로 판단된다. 다른 언론사 기자들의 문제의식도 희미했다. 오히려 늘어난 하루 휴가를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반론도 적지 않다. 분노 어린 비판도 있다. ‘있을 수 없는 일’인 터다. 언론에 밝은 한 독자의 말은 신랄하다. “편법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이건 명백한 ‘사기’다.” 그는 덧붙였다. “하루 더 쉬겠다는 걸 탓하지 않는다. 연휴 전날의 극심한 교통난, 이에 따른 신문 배송의 어려움도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버젓이 다음 날짜를 명기한 신문을 내는 것은 뉴스를 전달하는 미디어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일이다. 이는 명백히 독자를 속이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거짓 신문’을 낸 셈이다. 신문은 시대의 기록인 터다. 가장 신선하고, 가장 중요한 ‘그날’의 뉴스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게 일간지의 책무다. 취재기자들은 그 생생한 뉴스를 쫓아 밤을 지새우며 불꽃 튀는 경쟁을 펼친다. 때로는 ‘특종’을 위해서, 때로는 깊이 있는 정보를 위해서. 마감 시간 직전의 한 시간, 아니 5분이나 10분은 그 경쟁의 승부를 가름하는 기나긴 시간이다. 그 10분을 놓치면, 독자들은 뉴스를 통째로 놓치거나, 내용과 의미가 허술한 ‘날림 기사’를 받아볼 수밖에 없다. 충실한 정보도 하루 뒷날의 보도는 뒷북치기다. 전날의 ‘낙종’ 상처는 오래 남게 마련이다.

더구나 일간지의 정보는 하루살이가 아니다. 신문 ‘스크랩’은 첨단 정보의 보물 창고다. 디지털 시대 이전, 언론사 조사부 서가를 가득 메운 것은 신문기사 스크랩북들이었다. 스크랩은 장르별로, 사안별로, 꼼꼼하게 분류돼 오려붙여졌다. 어제의 스크랩은 오늘의 새로운 뉴스를 위한 기초자료로 활용됐다. 신문사들은 물론 방송사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스크랩북은 언론사들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를 실생활에 활용하는 애독자들도 적잖았다. 학자들은 논문 자료를 찾을 목적으로 조사부를 방문했다. 가물거리는 기억의 갈증을 호소하는 일반 시민 방문객도 눈에 띄었다. 직접 관심분야 정보를 꾸준히 스크랩하는 독자들도 상당수였다. 스크랩북 전성기는 ‘똘똘한’ 디지털 기기 덕분에 이젠 옛이야기가 되었지만. 그러나 디지털 세계에서도 언론 정보의 엄정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엄정한 보도 원칙을 깬 <한겨레>의 무모한 시도에도 까닭은 있을 터. “거센 디지털 파도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의 하나다. 다각도로 신문 형태의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나오는 게 일간지라는 고정관념도 깨뜨릴 때라고 본다. 매주 3~4회 발행하는 서구의 일간지 사례도 면밀히 연구·검토하고 있다.” 편집국 일각의 해명은 귀담아들을 만도 하다.

문제는 하루 앞에 갑자기 나타난 ‘유령 신문’이라는 데 있다. 독자와의 약속을 어긴, 일간지 발행의 원칙을 깬 점을 그 해명은 설명하진 못한다. 9월6일치 ‘토요판’을 9월 5일치 부록으로 발행했더라면 까탈도 없었을 터. 이미 토요판은 평일판과는 판이한 얼개를 지닌 채 발행되고 있었다. 특집물과 대형 이슈의 뒷얘기, 굵직한 과거사 기록 등 기획물 중심에 약간의 뉴스가 첨가된 형식이었다.

긴 연휴, 민족 대이동, 극심한 교통난 등 특수 상황을 독자들도 충분히 납득했음직하다. 지루한 여행길에 읽을거리로도 제격이었으니. 열악한 노동조건에 놓인 기자들이 쉬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필자는 두 달 전의 칼럼 ‘일탈과 무지’에서 창조적 발상을 위해서는 기자들이 일상에서 벗어나길 권장한 바 있다. 그러나 굳이 동시에 이틀치를 발행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한겨레>는 진실의 상징이다. 각계의 전문가들, 대학생들의 <한겨레>에 대한 믿음은 높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그 신뢰도는 탁월하다. 그만큼 널리 읽히는 신문이기도 하다. 신선하고도 믿을 만한 뉴스에 대한 갈증 때문일 것이다. 최근 주간지 <시사저널>도 여론조사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 그 진실의 신문, <한겨레>의 일탈은 아이러니다. 이 ‘비범한’ 일에 놀라지 않는 세태가, 또한 놀랍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시민편집인실에 걸려온 항의전화는 열 손가락에 미치지 않았다. 그 항의의 강도도 부드러웠다. 이 놀랍고도 서글픈 현상은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신문이 뉴스의 왕좌에서 밀려났다는 엄연한 현실을 새삼 확인시켜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원칙과 상식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편법이 판치는 세태를 반영한다는 점이다.

이들 시사점은 <한겨레>에 ‘혁명’을 재촉하는 독촉장이기도 하다. 혁명의 방향과 성격은 두 갈래로 명시돼 있다. ‘언론 혁명’과 ‘사회 혁명’이 그것이다. 독촉장 첫 장은 말한다. “혁명적 변신이 없는 신문은 살아남을 수 없다. ‘깨작거리는’ 지면 개편 따위로는 날로 진화하는 디지털 공세에 맞서지 못할 것이다.”

둘째 장도 심상치 않다. “사회적 규범이 무너지고 있다. 거짓의 정치가 세상을 지배한다. 헌법정신은 간데없다. 인간, 생명에 대한 가치는 뒷전으로 밀린다. 우리는 이미 혁명의 시대에 깊이 빠져들지 않았는가.”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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