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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미국의 ‘이슬람국가’, 한국의 일본

등록 2014-09-10 18:43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 지역을 장악한 채 맹위를 떨치고 있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집단 ‘이슬람국가’(IS)가 미국 외교의 최대 골칫거리로 등장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각) 이슬람국가에 대한 공습 확대라는 칼을 빼어 든다지만, 얽히고설킨 중동 정세를 고려할 때 이것이 근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건 자명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국가 공격에 적극성을 띠게 된 것은 최근 자국 언론인 제임스 폴리와 스티븐 소틀로프가 참수되는 끔찍한 영상이 잇따라 공개되면서 미국 내 여론이 크게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앞장서 공격을 강화한다고 해서 이슬람국가를 무력화시킨다는 보장이 없고, 이슬람국가가 사라진 이후 중동 질서가 안정화할 것이란 보장은 더더구나 없다.

지금의 이슬람국가는 미국의 아들 조지 부시 정권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면서 열어젖힌 판도라의 상자에서 피어난 ‘악의 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아파가 다수인 이라크에서 소수 수니파의 지배체제를 구축했던 후세인의 몰락과 함께 중동 정세는 일거에 이란 중심의 시아파와 사우디아라비아 중심의 수니파 진영 간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한때 미국과 사우디 등 수니파 국가들의 자금과 무기 지원을 받아 시아파인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독재정권의 타도에 나섰던 반군 세력이 전략을 살짝 바꿔 시리아와 이라크 일부를 점령하면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 바로 ‘이슬람국가 사태’인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정 때문에 이슬람국가를 공격하는 것이 시리아 독재 및 이란의 입지를 강화하고, 적과 동지가 순간순간 뒤바뀌는 상황조차 발생한다. 중동 지역에서 시아파가 득세하는 것을 꺼리는 미국의 동맹국 사우디, 쿠웨이트, 카타르, 터키는 직간접으로 이슬람국가를 돕는 반면, 미국과 공식 적대관계에 있는 이란이 미국의 이슬람국가 공격에 가담하는 이상한 일도 벌어진다. 이런 딜레마적 상황이 먼저 정연하게 정리되지 않고서는 무엇을 해도 이슬람국가 문제는 쉽게 해결되기 어렵다.

이슬람국가가 미국 외교가 당면한 가장 큰 딜레마라면, 한국에선 일본이 그런 위치에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한 번도 둘이서 얼굴조차 맞댄 적이 없는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히면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군 군대위안부와 야스쿠니신사 문제에서 엿보이는 아베 총리의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보면, 그런 상태로는 안 만나는 게 백번 옳다. 하지만 서로 이견이 있더라도 만나는 것조차 거부하는 것은 심한 것 아니냐, 이견이 존재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상끼리 만나 풀어야 한다는 나라 안팎의 압박이 드세다. 특히,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아펙) 정상회의 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아베 총리가 양자 회담을 할 가능성이 커짐에 따라 이런 압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른바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집권 첫해인 2013년 3·1절 기념사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역사적 입장은 천년의 역사가 흘러도 변할 수 없다”고 초강경 대일 메시지를 보냈던 박 대통령도 마침 올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의 전향적 조처를 점잖게 촉구하는 데 그쳤다. 신임 주일대사도 원칙의 관철보다는 정치적 타협에 무게가 실린 인사를 기용했다. 마치 일본이 약간의 명분만 주면 그간의 원칙주의를 거둬들이고 타협을 꾀할 태세다.

그러나 중국의 움직임에 영향을 받아 대일 태도를 바꾸거나 그런 인상을 준다면 최악이다. 바꾸더라도 우리의 주체적 판단과 원칙에 따라 해야 한다.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중국보다 먼저 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를 통해 일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그런 전망 없이 덥석 정상회담부터 하자고 서두르는 것은 중동의 모순된 상황을 풀 해법도 없이 다시 전쟁의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미국의 이슬람국가 정책과 다를 바 없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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