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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물

등록 2014-08-18 18:39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이 모두 감동이었다. 낮고 힘없는 자를 향한 깊은 애정과 이 세상이 당면한 모순과 부조리에 대한 적실한 경고, 진정성 담긴 언행이 많은 사람의 마음에 공명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에서 덕망으로 ‘억울한 죄수’ 장 발장을 감화시킨 미리엘 주교가 책 밖으로 걸어나온 듯한 느낌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 그 한 사람의 출현으로 가톨릭에 대한 인상뿐 아니라 세상이 확 달라졌다. 가난하고 소외받는 대다수 인류가 마음으로나마 행복해졌고 힘을 얻었다. 이제 그의 언행은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종교와 이념, 국경을 뛰어넘어 큰 울림으로 메아리친다. 이런 큰 영향력의 요체는 무엇일까? 수많은 요소가 작용하겠지만, 나는 그의 방한 중 언행을 보면서 세상과 소통하는 탁월한 능력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확신한다.

방한 중 그의 소통 능력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은 뭐니 뭐니 해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의 만남이었다. 그는 분초를 다투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몇 차례나 되풀이해 세월호 유족을 면담하고 위로했다. 15일 대전월드컵경기장의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앞서 단원고 학생 2명과 유가족 8명을 만난 것을 시작으로, 행사장에 세월호 유가족이 보일 때마다 차에서 내려 손을 잡고 귀를 기울이며 격려를 해줬다. 특히, 16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시복식 행사장에 들어설 때는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중인 김영오씨를 비롯한 400여명의 유족이 있는 곳으로 직접 다가가 김씨의 얘기를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고 그가 건넨 편지를 받아 고이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이날도 그의 앞가슴에는 전날 세월호 유족이 건넨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는 세월호 유족이 안산에서 팽목항까지, 팽목항에서 대전까지 800㎞를 짊어지고 온 ‘세월호 십자가’를 건네받고 바티칸으로 가져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황의 관심이 유족이 바라는 특별법 제정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그의 진정성 있는 위로와 격려가, 시간이 흘러가면서 이 땅의 지도자들로부터 노골적으로 냉대와 멸시를 받고 있는 유족에게 커다란 마음의 치유제가 된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세월호 참사는 일종의 교통사고이고 유가족 농성은 노숙자를 연상시킨다고 하는 새누리당의 의원들, 마지못해 한 차례 이뤄진 유가족 면담과 ‘악어의 눈물’로 관심을 끄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이 프란치스코 교황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지 매우 궁금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소통도 그에 걸맞은 내용이 뒷받침되어 주지 않았다면 의미가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에는 항상 깊이 있고 공감 가는 문제의식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그의 언행은 힘이 있고 감동이 크다. 그가 방한 중 타고 다닌 소형차가 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은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질타와 경고가 함께했기 때문이었다. 날씨 탓이라고는 하나 갑작스레 케이티엑스(KTX)를 타고 이동한 것이 위선적으로 비치지 않았던 것도 “많은 이들과 함께할 수 있어 기뻤다”라는 말이 동행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의 언행일치의 힘은 불평등, 삶의 태도, 남북관계 등 더욱 근본적이고 묵직한 문제까지 자연스레 빛을 비췄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경제모델들을 거부하라.” “항상 다른 이를 위해 존재하라.” “(남북이)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언제나 한 가족인 것을 생각해야 한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의 결과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4박5일 동안 우리에게 너무나 크고 많은 선물을 안기고 떠났다. 이제 그가 선사해주고 간 것을 어떻게 소화해 우리 것으로 만드느냐의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먼저 지도자부터 그에게서 배우는 것이 지름길일 것이다.

감사해요, 교황! 잘 가세요, 교황!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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