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11 대 4’라는 참패를 당한 7·30 재보궐선거 결과를 놓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살길 찾기’ 움직임이 바쁘다. 이런저런 방안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김태일 교수의 다음과 같은 명언이 떠올라 영 믿음이 가질 않는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집단 기억력은 유효기간이 2주다. 그 기간엔 당원부터 원로급까지 ‘바꾸자’, ‘안 그러면 망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2주가 지나면 파벌의 특수이해가 고개를 들고 결국엔 계파 간 담합으로 마무리된다.”
그렇다. 문제는 계파다. 계파 문제를 피해가거나 얼버무리는 방식으론 그 어떤 비상대책도 효과를 보기 어렵다. 계파 문제에 정면 대응하면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살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나는 수많은 주장 가운데 우상호 의원의 의견에서 희망의 단초를 발견한다.
우 의원은 “지역위원회를 봉사·서비스·교육 등 공적 기능을 하는 조직으로 바꿔야 한다. 당이 현장의 국민들을 도와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며 “차라리 당직자들이 은행처럼 창구에 앉아 국민들의 민원을 받아 이를 구체적인 의정 활동으로 해결하는 게 어떠냐”고 말한다.
이른바 ‘풀뿌리 전략’이라고 할 수 있는 방안이다. 그간 이런 방안을 몰랐던 건 아닐 게다. 그런데 왜 전혀 실천되지 않았을까? 내가 보기엔 세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정부와 정당은 물론 한국 사회 전 분야를 지배하고 있는 중앙집권주의 때문이다. 지방선거마저도 중앙의 이슈에 의해 좌우되는 게 그간의 현실이었다. 중앙에서건 지역에서건 중앙의 이슈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는 믿음이 지배하는 정당에서 각 지역에서의 ‘풀뿌리 건설’은 투자 대비 수익률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된다.
둘째, 과거 지구당의 폐해에 대한 아픈 기억 때문이다. 비민주적인 지구당 운영, 사당(私黨)화된 지구당위원장제, 지구당 운영에 따른 막대한 정치자금 등의 폐해는 ‘풀뿌리’는 허울일 뿐 사실상 ‘인조 잔디’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을 유권자들에게까지 심어 주었다. 지금도 ‘풀뿌리 건설’은 막강한 자금·조직력으로 ‘인조 잔디’를 넓게 깔 수 있는 기득권 세력에게 유리할 뿐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셋째, 속된 말로 ‘빠’로 불리는 열성 지지자들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 하는 ‘계파 간 빠 격차’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당 대표 선출에서부터 선거 후보 공천에 이르기까지 일관된 방식이 없고 그때그때 다른 방식을 도입하는 걸로 악명이 높은데, 이는 ‘계파 간 빠 격차’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사이버 풀뿌리’를 풀뿌리로 간주해 예찬하는 계파가 있는가 하면, ‘사이버 풀뿌리’를 변형된 ‘인조 잔디’로 간주해 경계하는 계파도 있고, 진짜건 가짜건 균형된 유권자 대표성의 결여로 인한 ‘당심과 민심의 괴리’가 본선에서의 패배를 불러온다고 우려하는 계파도 있다. 이런 일련의 논란은 ‘풀뿌리 건설’을 골치 아픈 주제로 여겨 회피하게끔 만들었다.
이 세가지 문제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빠를 많이 가진 계파에 대해 다른 계파들이 두려움이나 반감을 가질 게 아니라 정공법으로 선의의 경쟁을 하는 게 해법이다. 이른바 ‘약한 연결의 힘’을 믿고, 당원이 아닌 선거인단 참여를 요청할 수 있는 수준의 사회적 네트워크 구성을 위한 저변 확대를 해보자. 이런 일은 빠가 없는 계파가 더 유리할 수도 있으니 해볼 만한 경쟁이다. 바로 여기서 우 의원의 방안이 해답일 수 있다.
그런 사회적 네트워크는 신진 인사 영입을 위한 ‘전략 공천’의 후보자가 지역 경선에 참여해 경쟁을 해볼 수도 있겠다는 자신감을 줄 정도의 규모여야 한다.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지레 겁먹지 말고 유권자들을 감동시킬 정도로 우 의원이 말한 방안을 적극 실천해보자. 처음에 착근이 어려워서 그렇지 풀뿌리는 인조 잔디에 비해 훨씬 질긴 생명력과 더불어 놀라운 효과를 보일 것이다. 이를 두고 새누리당과 선의의 경쟁을 벌인다면, 더욱 좋은 일이다.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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