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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장관님, 쉬운 길로 가시죠 / 안선희

등록 2014-08-17 18:50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6일 취임한 뒤로 한 달이 지났다. 그사이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세법 개정안, 서비스업 규제완화 등 굵직한 정책이 연이어 발표되면서 새 경제팀 정책구상이 드러났다.

제1 목표는 ‘내수 활성화’다. 이를 위해 최 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전방위적 경기부양책’이라는 포장 아래 전례없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정책구상이기 때문이다.

먼저, 부동산 대출 규제를 공격적으로 풀어 집 부자들과 은퇴세대, 빚내 집 산 1주택자 등에게 안도감을 주었다. 적극적 배당정책과 금리 인하로 주식시장 분위기도 좋아졌다. 과감한 규제완화를 계속할 것이라며 기업들을 안심시켰다. 중산층과 서민에게는 ‘가계소득 증대’라는 깜짝 카드를 내밀었다. 쌓여 있는 기업들의 돈을 가계로 흘러가게 하고, 비정규직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약속했다. “당장 41조원의 돈을 풀고 내년 예산도 최대한 늘리겠다”는 호언장담은 지지부진한 경제 상황에 지쳐 있던 사람들에게 ‘뭔가 달라지나 보다’ 하는 기대를 품게 했다. 보수적인 공급중시 경제학(규제완화)부터 전통적 케인스주의(확대재정과 금리 인하), 진보적인 포스트케인스주의의 ‘소득주도성장론’ 일부(가계소득 증대)까지 망라한, 좋게 말하면 유연하고 나쁘게 말하면 잡탕 같은 정책을 내놓은 것이다.

보수진영은 ‘기업소득을 억지로 가계로 돌린다니 말이 되느냐’고 입을 내밀었고, 진보진영은 ‘무늬만 가계소득 증대 정책 아니냐’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지만, 양쪽 다 목소리가 크지는 않았다. 보수 쪽은 ‘설마 이 정부가 우리한테 정말 해로운 정책을 하겠어’라는 믿음이 있었을 것이고, 진보 쪽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 정도가 어디야’라는 체념이 있었을 것이다. 정치인 출신답게 최 부총리는 이런 상황을 계산한 듯 보인다.

그사이 7·30 재보선이 있었고, 여당은 큰 승리를 거뒀다. 경제적 측면에서만 보면 ‘최경환 효과’가 일부 작용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제 파티는 끝났으니 계산을 할 시간이다. 최 부총리가 가계소득 증대의 핵심 정책으로 내세운 기업소득환류세제(일명 사내유보금 과세)는 구조만 복잡할 뿐 사실상 실효성이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풀겠다는 41조원은 대부분 이자만 조금 싼 대출일 뿐이다. 내년 예산을 얼마나 늘린다는 건지, 어디에 쓴다는 건지 영 안갯속이다. 정부 예산은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가계의 호주머니를 채울 수도, 기업의 배만 불릴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가 가계소득을 늘리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정책으로 꼽는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하고 있다. 역시 관건 중 하나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해소는 언급 자체가 거의 없다.

집값과 주가가 정말 오를지도 미지수지만, 오른다 해도 서민들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이로 인한 소비촉진 효과도 일시적일 뿐이다. 최경환 경제팀도 인정한 것처럼 한국 경제의 활기를 찾을 수 있는 정공법은, 모든 계층이 일한 만큼 정당하고 안정적인 소득을 얻음으로써 소비가 살아나고 내수가 활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 복지지출 확대, 중소기업 지원 같은 정책에 힘을 써야 한다.

‘지도에 없는 길’이 멋진 표현이긴 하지만, 뻔히 보이는 쉬운 길을 놔두고 자꾸 복잡한 길을 가려고 한다면, 정말 목적지에 가고 싶은 것인지 의심받게 될 수도 있다. ‘먹튀’ 공약은 경제민주화로 충분하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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