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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정세현 칼럼] 8·15에 아량 있는 대북제안을

등록 2014-08-03 18:27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이상 2013년), 통일대박, 드레스덴 선언, 통일준비위원회(이상 2014년). 박근혜 정부가 내놓은 대북정책들이다. 역대 정부에 비해 좀 많은 편이다. 그러나 남북관계는 답보 상태다. 회담을 몇번 했지만, 매번 접점을 못 찾고 합의 없이 끝났다. 왕래·교역도 잘 안된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성적표가 초라하다. 헷갈리는 메시지를 보내는 북한 때문인가, 아니면 상대는 없는 듯 일방통행을 하는 우리 때문인가?

필자는 북쪽보다 우리 쪽에 좀더 문제가 있다고 본다. 남북관계 발전과 통일기반 조성의 책임과 힘은 1990년대 초부터 이미 우리 쪽에 넘어왔기 때문이다. 이런 대북 자신감 때문인지 현 정부는 ‘원칙’이라는 명분 아래 일방적으로 남북관계를 끌어가려 한다. 외교에서는 때로 비공개 협상도 하고, 전쟁 중인 적국끼리도 물밑 접촉을 하는데, 현 정부는 “북한과 그런 건 안 한다”고 잘라 말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대북정책은 북한이 거부하면 애당초 추진할 수도, 성과를 낼 수도 없다. 최소한 북한이 거부하지는 않아야 되는 것이 대북정책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지난해 말까지 북한은 현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서 기대를 좀 했을 것 같다. 지난해 나온 정책이나 구상은 일단 북한의 협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자신들의 역할과 이득에 대한 기대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박 대통령이 느닷없이 ‘통일대박’을 거론했다. 곧이어 ‘2015년 자유민주주의 체제 통일’ 주장이 나왔다. 남북관계에 아무런 진전도 없는데 이런 논의들이 진행되자 북한이 악담을 쏟아냈다. 통일대박론과 자유민주주의 통일론에서 북한은 20여년 전 자기들을 괴롭혔던 흡수통일론의 그림자를 보았던 것 같다. 3월 말 드레스덴 선언의 대북 3대 제안과 통일준비위원회도 흡수통일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할 것이다.

그런 북한이 최근 ‘특별제안’, ‘중대제안’, ‘공화국 정부 성명’을 통해 남북대화를 계속 촉구하는 이유는 뭔가? 9월 아시안게임에 응원단까지 보내겠다면서 미사일을 발사하는 이유는 또 뭔가? 지금 북한은 대외관계 악화로 경제난과 체제위기의 이중고를 겪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율배반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본다. 남북대화를 통해 경제난 극복의 실마리를 찾고 1990년대 초처럼 체제 보장도 받고자 하는 것 같다. 미사일, 장사포를 발사하는 것은 8월 한-미 연합훈련을 앞두고 “우리를 건드리는 자 살아남을 수 없다”는 자신감을 주민들에게 심어 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본심은 남북대결이 아니라 남북대화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지금 동북아에서는 국제질서 재편의 주도권을 둘러싼 중-미 갈등이 심화되는 추세다. 중·미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처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외교를 정말 잘해나가야 한다. 특히 남북이 한목소리를 낼 수 있는 준비도 해야 한다. 맘에 안 들어도 더 큰 국익을 위해서 북한을 끌어안고 가야 할 필요성은 시간과 정비례로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선택이다. 북한이 거부하는 정책을 밀고 나감으로써 남북관계에서 성과 없이 임기를 마칠 것인가? 북한을 멀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제 밥그릇도 못 챙기는 신세가 될 것인가? 아니면, 남북협력을 통해 통일 기반을 구축해 나가면서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 당당한 한 축을 담당할 것인가?

1년 반 가까이 시도했지만 성과가 없으면 이제 방식을 바꿔야 한다. 국제정세 면에서는 남북협력이 시급하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박 대통령이 이번 8·15에 북한의 손을 잡아주면서, ‘남북이 신뢰를 쌓아나가면서 핵 문제도 풀어나가자’고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기 바란다. 8·15 경축사에서 한-미 연합훈련과는 무관하게 아시안게임 체육회담부터 하자고 북한에 제안하는 것도 방법이다.

정세현 원광대 총장·전 통일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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