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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북일 대화’를 응원한다

등록 2014-07-28 18:37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김영삼 정권 때인 1995년 6월의 일이다. 일본 자민당의 가토 고이치 정조회장이 주도해 한국보다 먼저 대북 쌀 지원을 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김 대통령이 발끈했고, 정부 당국자들도 ‘우리보다 먼저 일본이 쌀 지원을 하면 한-일 관계에 좋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 경고했다. 우여곡절 끝에 김 정권에서 부랴부랴 쌀을 보내고 나서야 일본도 쌀 지원을 하게 됐다. 그러나 그로 인한 앙금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96년 8월, 차기 자민당 간사장을 예약한 상태에서 청와대를 방문한 가토 의원을 보고도 눈길 한 번 주지 않으며 불쾌감을 표시했고, 김 정권은 이듬해 터진 금융위기 때 일본의 도움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김대중 정권 때는 상황이 일변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2년 9월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하고 북-일 관계 개선의 기본방향을 담은 평양선언을 채택했는데도 김대중 정권은 불만은커녕 오히려 환영의 뜻을 밝혔다. 이미 2년 전에 김 위원장을 만나 6·15 공동선언을 이끌어낸 김 대통령은 느긋한 태도로 고이즈미 총리에게 북-일 관계를 개선하려면 방북해 김 위원장을 만나는 게 좋을 것이라고 권유까지 한 터였다.

2014년 7월, 박근혜 정부는 다시 북-일 대화에 신경질적이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 건 이해할 수 있으나 북핵을 이유로 부과된 제재가 잘못 다뤄지면 북핵 해결의 국제공조를 깨뜨릴 우려가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7월4일 비공식 특별만찬을 한 뒤 주철기 외교안보수석이 공개한 이 말에 북-일 관계를 바라보는 박 정권의 시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현재 북-일 관계는 북한이 납치 일본인 등에 대한 포괄적 조사위원회를 구성한 데 대해 일본은 유엔 결의 외에 독자로 실시하고 있는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한 상태다. 조사에 진전이 있으면 아베 신조 총리의 방북과 만경봉호의 일본 입항 허가 등의 추가 제재 해제도 예상된다.

북-일 관계에 박 정부의 심기가 불편한 것은 남북관계가 나쁘기 때문이다.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응원단 문제 하나 제대로 풀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지경이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면 간단하다.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잘할 수 있는 북과의 관계 개선을 이뤄내면 북-일 관계 진전이 전혀 거슬릴 게 없다. 우리가 못 하고 있으니 남의 떡이 커 보이고 배가 아픈 것이다.

대북정책의 목표가 북한을 망하게 하는 게 아니고 국제무대의 책임 있는 나라로 유도하는 것이라면 북-일 대화를 응원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남북 간 불신의 골을 쉽게 메우기 어렵다면 일본을 통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되지 않는가.

지금 한반도 주변의 각 나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 가운데 북-일 대화만 빼고 모두 긴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북-일 관계는 한반도 평화 구축의 소중한 불씨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의 원본이 제시하는 것처럼 비정치·비군사 분야의 남북관계와 대일관계를 적극 개선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북-일 관계의 진전이 핵 및 미사일과 관련한 대북 포위망에 구멍을 낼 것이라는 우려도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미 중국이라는 큰 구멍이 존재하는 상태에 일본의 작은 구멍이 더해진다 해서 큰 영향이 없는데다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나라임을 내세우는 일본이 핵·미사일 문제의 진전 없이 페달을 함부로 밟을 리 없다. 또 일본이 납치 문제라는 인도적 사안을 고리로 북한과 대화를 하고 있는 것을 활용해, 한-일 사이의 가장 중요한 인도 문제인 일본군 군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추급하는 동력으로 삼을 만하다. 너의 인도 문제가 중요하면 남의 인도 문제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할 호기다.

나는 이런 이유로 북-일 대화가 진전되길 진정으로 응원한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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