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지난달 23일치 이 자리에서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해 ‘외눈박이 성장주의자’라고 썼다. 그의 과거 행보가 그랬다.
지난 8일 청문회에서 그는 “기업의 사내유보금이 투자와 배당, 임금 등을 통해서 가계소득으로 흘러야 한다” “비정규직 임금이 올라야 한다” 같은 발언을 내놨다. 예상을 벗어난 내용이었다.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야 경제활력’은 지난달 <한겨레>가 2기 경제팀의 과제에 대해 쓴 기사 제목이다.
여러 품평이 쏟아졌다. 한 야당 의원은 “한번 속지 두번 속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청문회용이다’ ‘성동격서 아니냐’ 같은 냉소도 있었다. 의외로 가장 긍정적인 평가는 한 헌신적인 진보운동가에게서 나왔다. “국정을 운영하는 사람들 아니냐. 사명의식이 있을 거다. 실제 얼마나 할지는 모르겠지만, 국정 방향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에서 나왔다고 본다.”
16일 취임사가 나왔다. 한발 더 나아갔다. “‘기업이 잘되면 경제도 잘 굴러가겠지’ 하는 기존의 사고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음날 일부 신문은 ‘최경환, 성장·분배 두 토끼 잡기’라는 제목을 뽑았다. 최 부총리의 머릿속에 정말 두 마리 토끼가 있을까?
그가 내놓은 다른 정책들을 보자. 기금을 동원한 돈풀기, 확장적 예산 편성, 금리 인하, 부동산 대출규제 풀기. 가계소득 부분만 제외하면 정부가 으레 해오던 단기부양책과 큰 차이가 없다. 최 부총리는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따라갈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일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 부총리가 우리 경제에 대한 깊은 고민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는지, 자신의 임기 안에 성과를 보이고 싶은 조급증 때문에 무리한 부양책을 쓰는 것에 대한 합리화로 디플레 우려를 내세우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최대 목표는 성장률 끌어올리기다.
다만 그는 ‘성장’이라는 토끼를 잡기 위해, ‘분배’라는 토끼를 더는 외면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최 부총리의 ‘가계소득 증대’ 주장은 변신이 아니라 본색에 충실한 것이다. 다른 정책들에 대한 우려와 별개로, 이 판단에 대해서는 그 의미를 폄하하고 싶지 않다. 한 경제관료는 “우리 경제가 부진한 이유는 지표들을 보면 명확하다. 소비가 문제다. 수출은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다. 왜 소비가 안 될까. 가계가 쓸 돈이 없기 때문이다.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자명한 사실이 기재부 장관의 입에서 나오기까지 참 시간이 많이도 걸렸다.
이제 남은 것은 구체적인 정책이다. 아무리 ‘실세 부총리’라고 해도 쉽지 않은 목표다. 대기업과 보수진영의 반발도 만만찮을 것이다. 하지만 실효성 등에서 한계가 빤히 보이는 찔끔 대책이 나온다면, 역시 ‘립서비스’였다는 비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 부총리가 17일 찾은 인력시장에서 일용노동자들이 그를 붙들고 말했다. “임금이 10년 전이랑 똑같다.” “말로만 하지 말라. 지금은 기대가 산산이 부서져 내가 국민이 맞나 생각도 든다.”
그러니 ‘성장주의자’ 최 부총리에게 말하고 싶다. 성장을 위해서라도 분배하라고. 더 과감하게, 더 빠르게. 이는 <한겨레>가 최근 소개하고 있는 ‘소득주도성장론’의 모토이기도 하고, 한국 정부가 신줏단지처럼 떠받들어왔던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기관들의 권고이기도 하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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