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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오태규 칼럼] 한-중 정상회담은 실패다

등록 2014-07-07 18:32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박근혜-시진핑의 3일 한-중 정상회담은 매우 예민한 정세 속에서 열렸다. 국내뿐 아니라 북한·미국·일본 등 주변국이 모두 신경을 곤두세운 채 지켜봤다. 한국 외교사에서 이번 회담만큼 시작 전부터 안팎의 지대한 관심을 끈 외교 행사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안에서는 세월호 참사 이후 활력을 상실한 박근혜 대통령이 반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점에서, 바깥에선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일본과 중국의 힘겨루기 속에서 한국의 균형추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를 가늠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먼저 미국에서 한반도 정책을 책임지고 있는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방한하기 보름 전에 그의 방한에 대해 “예사롭지 않은 이정표”라는 예사롭지 않은 표현을 사용하며 각별한 관심을 표시했다. 회담을 전후해 고노 담화 검증, 해석개헌에 의한 집단적 자위권 행사 결정, 대북 제재 일부 해제 등 일련의 ‘대한 도발’ 행동을 한 일본도 경계감을 늦추지 않았다. 둘 다 그 속엔 한국이 중국 견제를 위한 한-미-일 공동전선에서 이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담겨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북한도 미사일 발사, 북-일 납치 교섭, 대남 중대 제의를 하며 실속 챙기기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시 주석이 서울에 왔다. 국가주석 취임 이후 최초의 외국 단독방문,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찾은 최초의 국가주석이라는 선물을 들고 방문했다. 박 대통령도 취임 1년여 만에 다섯번이나 만나는 ‘오랜 친구’를 극진히 접대했다. 이웃의 아베 신조 총리와는 단독으로 한번도 만나지 않은 것에 비해 확실한 중국 경도라고 볼 만하다. 시 주석의 파격적인 행보는 이참에 일본과 틈이 벌어진 박 대통령을 확실하게 중국 쪽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노골적인 구애였다.

한국으로서는 이번 회담이야말로 주변국들의 애정 공세를 활용해 창의적인 외교를 펼칠 수 있는 물실호기의 기회였다. 중국의 짝사랑을 한반도 문제 해결의 동력으로 만들고, 중국의 ‘난폭한 부상’에 대해 할 말을 함으로써 미·일과 중국의 대치 속에서 한국 외교가 활동할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을 창출했어야 했다. 그러나 결과는 ‘빛 좋은 개살구’에 그쳤다. 회담 결과를 보면, 의전과 형식만 도드라질 뿐 실질과 내용은 빈약했다.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는 점에서 실패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두 가지 점에서 실패가 눈에 띈다. 첫째, 가장 중요한 북한 핵에서 전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정부는 ‘한반도에서 핵무기 개발에 확고히 반대한다’는 내용이 공동성명에 담긴 것 등을 큰 성과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런 문구가 아니라 북핵 문제를 푸는 실행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정상은 이에 대한 해답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한국 정부가 북핵 문제에 가장 높은 벽을 쌓고 있는 미국은커녕 가장 벽이 낮은 중국조차 견인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번 기회를 놓침으로써 한국의 북핵 문제 주도권 확보는 더욱 힘들게 됐다.

둘째, 이번 회담 결과에 흔쾌히 만족하거나 긴장하는 나라가 없다는 점이다. 춤추는 일본의 과거사 및 우경화 대응 과정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과거사 공동대응이 빠진 것에 내심 불만일 테고, 일본·미국은 다음날 비공식 오찬회동에서 공동성명에 빠진 대일 공조가 살아난 것을 매우 못마땅해한다.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겠지만 이런 원칙 없는 자세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도 설득하기도 힘들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년여간 외교로 지지율의 상당 부분을 채워왔다. 그런 데에는 외교적 식견이나 전문성이 부족한 일반시민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협력 구상 같은 허명에 현혹된 탓도 컸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이름이나 홍보만으로 지지를 확보할 수 없다. 실력을 보여줘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박-시 회담은 여전히 ‘실질보다 포장’에 치중해온 박근혜 외교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오태규 논설위원실장, 페이스북 @ohtak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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