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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세월호 이후 사회를 생각하기 / 도정일

등록 2014-07-03 18:26수정 2014-07-03 22:41

사회가 시장논리의 절대화를 관철하려 들 경우 사회는 ‘반드시’ 무너져 몰가치 무규범 사회로 곤두박질한다. 곤두박질하는 사회를 방지할 최종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시민사회이고 시민이다. 세월호 이후 시대의 시민은 사회의 실패를 막아내고 사회의 몰락과 붕괴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는 그 이전의 한국 사회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아직은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그것은 사회 일부 세력의 주장이나 의견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 전체에 내린 명령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 명령은 간명하고 준엄하다. 너희는 그런 참담한 사고를 다시 반복하고 싶은가? 아니라면 너희가 할 일은 간단하다. 참사를 막지 못하는 사회를 뜯어고쳐 실패하는 사회로부터 실패의 가능성을 최대한 막아낼 수 있는 사회로 이행하라. 이것이 그 명령의 간명함이다. 이 명령에는 망각을 경계하라는 준엄한 경고가 따라붙는다. 사회 개조의 명령을 망각하는 순간 너희는 다시 실패의 반복과 연속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연달아 실패하는 사회에는 사회 그 자체의 침몰과 붕괴라는 가능성만 남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지옥의 가능성이다.

사회는 어느 때 실패하는가?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벼락 치듯 안긴 절실하고 다급한 질문들 중에서 최우선으로 꼽아야 할 것은 도대체 우리가, 대한민국 사람들이, 어떤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정신 가지고 살고자 하는 사회의 사람들이라면 항시 기억해야 하는 질문이다. 그 질문의 있고 없음은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가치관, 사회적 비전과 교육, 인간관계와 역사 만들기에 결정적 차이를 낼 수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뒤집어 놓은 것이 사회는 어느 때 실패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것도 바로 그 질문이다. 사회는 어느 때 ‘세월호’를 낳는가?

어느 사회도 실패를 환영하지 않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실패하는 사회는 실패할 이유가 있어서 실패한다. 사회적 실패는 주로 네 가지 상황에서 발생한다. 첫째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미리 예견하거나 예상하지 못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심각한 문제가 이미 발생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인식하거나 감지하지 못하는 경우다. 셋째는 의지의 결여, 넷째는 불충분성이다. 사회가 어떤 문제를 발견하긴 했으나 그것을 해결하려 들지 않는 것이 의지의 결여다. 의지의 결여는 무지 이상으로 사회적 실패의 큰 요인이 된다. 불충분성도 실패의 큰 요인을 구성한다. 문제를 알고 해결하고자 하면서도 비용이 너무 든다거나 어렵다거나 등등의 이유와 구실을 만들어 어물거리다가 시기를 놓쳐버리는 것이 불충분성에 의한 실패다.

모든 실패는 뒤집어 보면 ‘실패의 선택’이다. 사회는 함부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망할 이유가 있기 때문에 망한다. 사회를 망하게 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것이 결정의 오류, 곧 틀린 결정을 선택하고 그것을 따라가기다. 옳은 결정이건 틀린 결정이건 결정은 이미 선택 행위다. 문제의 발생 가능성을 미리 예상하지 못한 데서 발생하는 실패는 인간 능력의 일반적 한계와 관계된다. 그러나 그 실패조차도 따져보면 상상력의 사회적 경색, 곧 다른 가능성과 방법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회의 ‘선택의 실패’일 때가 많다.

세월호 참사의 준엄한 명령 앞에서도 우리 사회는 지금 어떤 중대한 실패를 선택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패의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는 명령의 다급함과 절실함이 다시 이런저런 이유로 망각되고 마모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앞서 얘기한 사회적 실패의 조건들은 세월호 이후의 한국 사회를 개조하고자 할 때에도 무엇을 경계해야 하는가를 보여준다. 문제의 재발 가능성을 예상하지 못하는 상상력의 실패, 문제의 소재 지점을 찾아내지 못하거나 찾아내기를 거부하는 나태와 인식 실패, 문제는 발견했지만 의지 부족으로 해결에 나서지 못하는 우유부단, 문제를 알면서도 제때에 해결책을 동원하지 못하는 안일성과 무능--이런 실패의 가능성들이 지금 다시 세월호 이후 시대에 요구되는 한국 사회 개조의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

세월호 이후 시대를 향한 우리의 사회적 노력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분야와 영역들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국가와 정치권에 안겨진 책임은 막중하다. 그러나 사회 개조 작업은 정치 영역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사고 발생의 원인을 정확히 찾아내고 책임의 소재 지점을 밝혀내어 왜 이런 사고가 발생했는지를 규명하고 대책을 수립하는 일에 우선순위가 주어져 있다. 그러나 지금 이 단계에서도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것은 세월호 이후 시대의 우리 사회를 어떤 사회로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다. 그 개조 작업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은 우리 사회를 ‘사람을 존중하고 사람이 살 수 있는 사회’로 만들어 나간다는 비전과 약속이며, 이 비전과 약속의 사회적 공유다. 이런 비전을 중심에 둔 사회 개조 작업에는 정치 영역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의 제 영역들에서의 대안 추구,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영 방식을 모색하는 일이 필요하고 장기적 연구와 성찰, 모색과 실천이 필요하다. 이것은 장기적 과제이면서 동시에 어떤 현안 못지않은 본질적 과제다. 정권의 실패나 국가의 실패를 따지고 책임을 묻는 일은 절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그러나 사회의 실패는 없었는가? 정부의 실패도 한 사회를 망하게 할 수 있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회 자체가 실패의 가능성을 보지 않기로 할 때의 실패, 곧 ‘사회의 실패’다. 사회의 실패를 고치는 일은 누가 담당할 수 있는가?

한국 사회 다시 만들기라는 과제를 진지하게 생각해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절망적인 조건 하나와 씨름해야 하는 일이 안겨진다. 그것은 지난 수십년 동안 대다수 한국인을 사로잡아온 어떤 정신상태, 가치관, 도그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서 언제나 최종적으로 중요한 것은 “결국 돈이구나”의 가치체계,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인간관, 시장논리 하나로 사회를 운영하려 드는 멘탈리티다. 돈도 중요하고 시장논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런 식의 가치 단일화나 논리의 유일화에 전면적으로 복속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사회는 시장이 아니다. 시장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는 시장논리의 절대화만으로는 경영되지 않는다. 더 중요하게, 그런 논리를 관철하려 들 경우 사회는 ‘반드시’ 무너져 몰가치 무규범 사회로 곤두박질한다. 세월호 참사가 보여준 것은 바로 이 곤두박질하는 사회다. 지금 우리가 몸서리치고 있는 것은 그 곤두박질이 여객선 하나의 문제를 넘어 사회 전체의 운명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곤두박질하는 사회를 방지할 최종적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그 책임의 최종 소재지점은 시민사회이고 시민이다. 시민은 누구인가? 세월호 이후 시대의 시민은 사회의 실패를 막아내고 사회의 몰락과 붕괴를 거부하는 사람이다. 그런 시민이 없다면 사회 개조는 불가능하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 성원으로서 소홀히 할 수 없는 중요하고 시급한 일들이 많다. 그 많은 일들 중에서도 지금 이 글의 맥락에 비추어 말한다면 세 가지 큰일들이 어떤 본질 과제 같은 무게를 가지고 머리에 떠오른다. 첫번째로 대두하는 본질적 질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것이다. 이것은 생존의 차원보다는 우리의 삶을 가치, 의미, 목적의 차원에 연결시킬 때 아무도 외면하지 못하는 질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 질문을 잊고 산 지 오래다. 두번째 제기되는 본질적 질문은, 이미 위에서 얘기한 대로, “우리는 어떤 사회를 만들어야 할까”라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의 삶과 집단의 삶, 자유와 공동체적 책임에 관계되는 문제다. 이런 연결관계에서 그 문제를 생각하는 능력의 중대한 결손을 보여온 것이 현대 한국인이다. 세번째 질문은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문제다. 이 문제는 다른 기회에 다룰까 싶다.

도정일 경희대 명예교수·문학평론가

세월호 재판, 진실을 말하라! [21의생각#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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