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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생존을 위한 연극 / 김회승

등록 2014-07-02 18:49

영국의 기숙형 사립학교(보딩스쿨)는 고위 관료와 정치인의 필수 코스다. 데이비드 캐머런 현 총리를 포함해 영국 내각의 절반 이상이 보딩스쿨 출신이다. 명문 보딩스쿨을 나와 옥스브리지(옥스퍼드-케임브리지)를 거쳐 고위직에 진출하는 게 상류층의 공통적인 이력이다.

<상처받은 지도자>의 작가 닉 더펠의 보딩스쿨 해부는 흥미롭다. 더펠은 보딩스쿨 졸업생이자 교사였다. 지금은 보딩스쿨 졸업생(그는 ‘생존자’라 부른다)들의 정신세계를 해부하며 이들을 위한 치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분석을 보면, 이들은 어릴 적부터 24시간 엄격한 규율과 문화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다. 생존을 위해 자신의 감정을 차단하고 방어적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자기방어를 위해 ‘가짜 어른’ 행세를 하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환경이 진정한 자아의 성숙을 가로막는다. 예컨대, 약한 학생 괴롭히기, 고개 숙이고 외면하기, 귀엽게 말을 더듬어 곤경 외면하기 등 ‘생존을 위한 연극’이 일상화하면서 이중인격적 증후군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강력한 ‘생존 지향성’은 반대로 ‘공감 지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 이른바 ‘감성 지능’을 계발할 기회가 없다. 상대와 협상하기보다 강경한 원칙을 내세우고, 부끄러움을 감추려 먼저 상대를 공격하기도 한다. 더펠은 “자신이 부끄럽지 않다는 점을 증명하려 다른 이에게 화살을 쏘는 이중인격성은 자기 자신마저도 기만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그는 최근 <가디언> 칼럼에서 정신과학 전문가들의 리더십 연구를 소개했다. “감성 없이는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없고(안토니우 다마지우), 애정이 없으면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없으며(수 게르하르트), 마음을 닫으면 다른 이의 표정을 해석할 수 없다(스티븐 포지스).” 정홍원 총리를 유임하고선 청문회 제도를 탓하는 박근혜 대통령, 또 한편의 생존을 위한 연극을 보는 듯하다.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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