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그 성급한 산업화, 비약적 성장과 함께 우리의 영혼도 따라오고 있는지, 거기에 어울릴 정신과 양식이 어깨를 겯고 있는지, 늦었지만 돌아볼 때다. 대한민국의 맨모습인 ‘세월호’ 밑창에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란 말의 2001년 판 우리 영한사전 뜻풀이는 ‘폭탄이 떨어진 자리’란 군사용어였다. 구글 한글판을 찾아보니 ‘원자폭탄이 떨어진 자리’ ‘미국 반핵 운동 단체’ ‘9·11 테러를 당한 뉴욕의 세계무역센터 자리’로 진화되었다. 내가 이 단어를 생각한 것은 1950년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처절한 6·25가 우리 역사에서 그런 ‘그라운드 제로’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정말, 두해 전에 구입한 스마트폰에 내장된 사전에서 찾아본 이 단어에는 앞의 뜻에, “(비유적으로) 활발한 활동(급격한 변화)의 중심(기원)”이란 풀이가 덧붙었다. 나는 이 전의(轉義)가 그제 64주년을 맞은 한국전쟁에 대한 내 생각과 잘 들어맞는 것이 반가웠다.
두 세대 전 내가 초등생 때 닥친 한국전쟁에 대해, 언론인 최정호가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란 30여년 전의 글에서 “한국 현대사의 새로운 기원”으로 평가한 것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는 “세계가 한국에 들어온 전쟁이면서 (…) 한국이 세계에 들어간 전쟁”이었다는 점, 미/소의 이념 전쟁을 한국이 대리전으로 떠맡은 ‘시민전쟁’이었다는 점, 온 국민이 참혹한 피해를 입은 ‘전면전’이었다는 점 등 세 가지 이유를 들면서 “1950년 이후의 한국에서 전개되었고 또 전개될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과정이 한국전쟁에 소급해 올라가서 그 뿌리를 캐보지 않고서는 설명키 어렵다”고 지적했다. 나는 이 골육상쟁의 이념전쟁론에 민족적 심성의 변화 두 가지를 보태고 싶다. 하나는 극도의 고통과 빈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어떤 행위도 정당화되었다는 점이다. 남극에서는 어떤 쪽으로 가든 북을 향한 것이듯 우리의 의식과 목표는 생존의 문제로 집중되었고, 그 싸움은 모두 당연한 생의 의지로 인정되었다. 여기에 박차를 가한 것이 ‘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이다, 보수 전통의 우리 민족에게 닥쳐온 개항 이후의 변화들은 국권 상실과 식민 지배, 남북 분단 등 비극적 사태뿐이었고 그랬기에 새로운 것이란 다만 불행의 예고로 보였다. 6·25와 그 혼돈의 전후를 넘은 후, 4·19의 밑으로부터의 혁명, 5·16의 개발 계획에서 시작된 변화들은 현실을 개선하는 적극적 성과를 보이며 전날의 비관적인 선입관을 벗겨내고 우리 운명을 발전시킬 낙관적이고 도전적인 자신감으로 반전되었다. 이 변화는 해외의 땅으로, 미래의 영역으로 스스로 누리며 추구하게 되면서 이제껏 내 것이 아니었던 나의 삶은 스스로 운영하며 개발하고 책임질 근대적 주체로 변화한 것이다.
그 ‘생존 방법의 정당화’와 ‘변화의 추구’ 덕분에, 우리는 6·25란 ‘그라운드 제로’에 던져진 최악의 상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러워하는 한국인의 뜨거운 교육열이 거기에 힘을 주었고, 전통 사회의 와해가 타불라 라사(백지)에서의 새 출발을 용이하게 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 중 유일하게 근대화한 나라’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단 하나의 선진 국가’ ‘20-50클럽(인구 5000만명 이상,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의 나라들)에 7번째로 진입한 나라’란 찬사는 그저 영예만이 아니었다. 내가 대학 시절 100달러 미만이었던 국민소득이 이제 250배 이상 늘었다는 것, 사회생활의 한창때도 전화 한대 놓기가 그처럼 어렵던 시절로부터 한 세대가 안 되어 세계 1위의 정보기술(IT) 산업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이 모든 급격한 변화의 첫 움직임이 한반도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던 전쟁에서 시작되고 그 고난의 역사를 돌파하려는 극단의 열망과 노력으로 근대화와 산업화,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오늘의 한국에 주축이 되었음을 회고하며 그 성취에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영광과 자신감의 뒤편에는 당연히 그늘과 회의가 스밀 수밖에 없음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관대한 ‘정당화’는 부도덕도 용인했고 ‘변화의 추구’는 이른바 ‘새것 콤플렉스’로 왜곡되었다. 우리의 ‘압축 성장’은 이 성급한 성장주의의 박력 속에 매우 불편한 진실을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절대빈곤보다 더 문제적인 ‘상대적 빈곤감’의 확대, 창의와 근검의 미덕에서보다 부패와 비리의 유착으로 가능해진 부의 축적, 문어발 경영으로 추태를 보이는 재벌 기업들의 탐욕, 크고 작은 거래에서의 ‘갑’의 횡포 등 갖가지 악덕들을 모은 천민자본주의의 횡포가 오늘의 한국적 발전에 동력이 되었다는 혐의를 지우기 어렵다. ‘무에서의 출발’이 빚는 생존의 다급한 경로가 목표 지상주의 열정 속에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재산 증대와 권력 획득을 정당화했다는 점, 경제는 적극 개방하면서 정치는 폐쇄적인 독재 권력의 행사로 관용의 덕성을 밀치고 ‘배제의 논리’로 시의와 불신, 불화와 갈등을 키웠던 점, 두 세대 동안 서구의 열 배에 맞먹는 초고속 성장으로 이른바 ‘비동시적인 것의 공존’ 현상이 만연하며 가치관과 삶의 태도가 균열되지 않을 수 없었던 점들이 성장의 화려한 위세에 가려진 부끄러운 속살이었다. 4·19와 5·16, 5·18과 6·10, 그리고 유신과 반체제, 평화시장과 동일방직 등 연이은 사건과 사태들을 통해 숱한 목숨과 고통을 속죄양으로 바치고서야 겨우 민주정치를 정착시키고 경제 수준을 높일 수 있었지만, 그러고도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더 크게 남아 있다. 전근대적 봉건의 타성, 운동권의 근대적 이념, 탈근대의 디지털 문화 등 세대 간의 이질적 의식의 충돌, 지역간 직종간 계층간의 사회적 갈등, 물신주의와 교환가치의 지배, 세계화와 토착성의 길항, 당리당략이 우선하는 정치적 후진, 환경 파괴와 생명의 폄하, 정서적 천박과 태도의 허황, 갈수록 두터워지는 증오의 심리가 오늘의 한국과 한국인의 인격과 인성을 추락시키고 있는 것이다(‘명망 높은 분들’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보라!).
‘세월호 사태’는 가깝고 먼 원인에서부터 생명들의 구조 현장, 후속 조처들, 정계와 관계 기관 간의 대책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압축 성장’이 키운 갖가지 부정적 성격들을 가림없이 보여준다. 울리히 벡은 30년 전의 <위험사회>에서 “고전적 산업사회에서는 부 생산의 논리가 위험 생산의 논리를 지배했다면, 위험사회에서는 이 관계가 역전된다”고 지적한다. 전 시대의 자본주의적 근대화 시기에는 경제적 성장을 수행하면서 뒤따라올 위험에 대비했지만, 오늘날은 가령 핵과 자연 훼손 산업처럼 위험의 생산 자체로 성장을 추구하고 있음을 가리킨 것이리라. ‘세월호’ 사태는 벡이 권고한 ‘근대성의 성찰’까지 갈 것 없이, 우리의 그 과정 자체가 지닌 문제성들을 보여주면서 오늘의 한국이 누리는 번영의 속살을 보여준다.
시인 천양희의 산문집 <나는 울지 않는 바람이다>는 짧지만 길게 생각할 이야기 하나를 전한다. 아메리카 인디언은 말을 타고 질주하다 문득 멈추고 자기가 달려온 길을 되돌아보곤 한다. “너무 빨리 달려와서 자신의 영혼이 따라오지 못했을까봐 걱정”되어서이다. 같은 이야기를 시로 옮긴 이시영의 <옛날엔>은 그런 “그들이야말로 영원한 대지의 자식들”이라고 찬탄한다. 이제 우리는 그 성급한 산업화, 비약적 성장과 함께 우리의 영혼도 따라오고 있는지, 거기에 어울릴 정신과 양식이 어깨를 겯고 있는지, 늦었지만 돌아볼 때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맨 모습인 ‘세월호’ 밑창에 평형수를 제대로 채우고 있는지 지켜봐야 한다.
김병익 문학평론가
김병익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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