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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문창극쇼’에 홀린 사이 / 안선희

등록 2014-06-22 18:17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새 내각 후보자들이 지명된 뒤, 여론의 관심이 일부 후보자들의 ‘과거’에 쏠려 있다. 제자 논문을 상습적으로 자신의 연구 성과로 가로챘다는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김명수), ‘차떼기’ 정치자금 배달책을 맡았다는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이병기), 맥주병으로 기자 머리를 내리쳤다는 민정수석(김영한) 등 내용도 다채롭다.

특히 문창극 총리 후보의 원맨쇼는 눈을 떼기 힘들다.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도 예사롭지 않지만, 그 이후 행보도 그렇다. 19일 기자들 앞에서 자신의 안중근 의사 관련 칼럼을 읽고, 안중근의사기념관에 헌화한 사진을 흔들며 “나는 친일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일 때는, 순간 ‘이해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연민을 느낄 뻔했다.

새 내각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도 중요하지만, 이런 소동 탓에 가려지고 있는 일들이 있다.

16일 정부는 행정규제기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규제평가 기준에 ‘기업활동’을 넣고, 규제비용총량제를 도입하고, 규제체계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꾸는 등 총 37개 조문 대부분을 손질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전 추진하던 규제완화 드라이브에 박차를 가하는 내용이다. 세월호 참사로 기업 이윤만을 우선시한 규제완화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지만, 이런 여론이 반영된 부분은 ‘규제개혁위원회는 생명, 안전 등의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각 부처에 규제의 신설·보완·강화 등을 권고할 수 있다’는 형식적 조항 한 줄뿐이다.

오는 29일은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 최저임금을 의결해 정부에 제출하는 날이다. 노동자 쪽에서는 시간당 6700원을, 사용자 쪽에서는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불평등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현실에서 총리 후보자의 역사인식만큼이나 중요한 문제다. 박근혜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소득분배 조정분을 감안해 최저임금 인상기준을 마련하고, 근로자의 기본생활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올해도 ‘근로자의 기본생활’이 보장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리가 ‘과거’를 누구보다 눈여겨봐야 할 후보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다. 그는 경제부처 공무원, 언론인 등을 거쳐 2004년 국회의원이 된 이래 줄곧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 등을 주장했고, 경제민주화와 분배에는 부정적이었다. “가장 효과적인 규제완화는 감세정책이다”(2009년 12월), “히포크라테스 정신으로 의료사업을 하는 사람이 누가 있나. 다 돈 벌려고 하는 것 아닌가. 영리의료법인을 육성해야 한다”(2009년 12월), “경제민주화 이슈를 대선까지 가져갈 수 없다”(2012년 8월), “부동산시장은 한겨울인데 한여름옷(대출규제)을 입고 있어서는 안 된다”(지명 직후) 등 ‘주옥같은’ 발언이 끝이 없다.

세월호 참사로 기업 중심 성장지상주의에 대한 반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신자유주의’가 대중어가 될 정도로 우리 경제체제의 비인간적 이윤 추구 경향에 대한 비판이 큰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참사 두달 만에 모든 것이 원위치다. 박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의 반성문 격인 새 내각의 경제부총리 자리에 외눈박이 성장주의자를 앉혔다. 규제완화 드라이브는 재시동을 걸었다. 최저임금은 이번에도 ‘현실화’되지 못할 것이다. 문창극 후보자가 자진사퇴한다고 해도, 이병기·김명수 후보자까지 물러난다고 해도 이 사실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304명의 목숨을 잃고도 우리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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