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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눈물병’에 담은 대통령의 눈물

등록 2014-06-02 18:35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안대희 전 대법관이 국무총리 후보자에서 중도하차한 날, 청와대 대변인이 전한 박근혜 대통령의 심경은 “안타깝다”는 것이었다. 안타까움의 대상이 무엇인지는 알 길이 없다. 자신이 회심의 카드로 뽑은 총리 후보자의 숨겨진 진면목이 안타깝다는 말일까, 아니면 그런 훌륭한 인물을 깎아내리려는 세간의 풍토가 안타깝다는 뜻일까. 그것도 아니면 자신이 구상했던 지방선거 돌파 전략이 흔들리게 된 것을 안타까워한 것일까. 그 말의 깊은 속뜻을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대통령 본인의 판단력 부재나, 사람 보는 안목의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은 아니었다는 점이다.

‘눈물’과 ‘안대희’ 두 가지 카드로 지방선거를 돌파하려는 전략은 어쨌든 수정됐다. 이제 안대희는 갔고 눈물만 남았다. 새누리당은 일제히 눈물 작전에 나섰다. 이른바 ‘박근혜 살리기’ 읍소 작전이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효용 가치는 극대화된다. 아끼는 신하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곁에 있는 신하에게 눈물병을 가져오라고 해서 눈물을 두 방울 떨어뜨린 뒤 마개를 닫아 보관하게 했다는 로마 황제의 이야기도 떠오른다. 대통령의 천금같이 소중한 눈물을 갖고 지금 새누리당은 눈물겨운 ‘박근혜 마케팅’ 활동을 벌인다.

요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펼치는 전략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의 첫번째 텔레비전 광고였던 ‘상처편’과도 일맥상통해 보인다. 박 대통령 신촌 피습 사건의 영상으로 시작된 그 광고는 전형적인 이미지 광고, 감성적 소구 기법을 활용한 광고였다. 어느 틈엔가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은 박 대통령이 돼 버렸다. 구조받아야 할 사람도 박 대통령이고, 국민이 눈물을 닦아줘야 할 사람도 박 대통령이다. 그래서 ‘대통령의 눈물’과 ‘새로운 대한민국’을 내건 감성적 선거운동은 나름의 효력을 발휘한다. 지난 대선 때 신문 1면에 실은 ‘국민과의 약속을 반드시 지킬 사람’이라는 광고가 결국 허위·과장 광고였다는 사실은 어느 틈에 잊히고 있다.

안대희 후보자의 낙마와 함께 슬그머니 사라진 단어지만 한때 ‘소신 총리’니 ‘직언 총리’니 하는 말이 범람했다. 대선 과정에서 그가 한광옥씨의 영입에 반대했다는 것 등이 그 근거였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분석과 전망에 별로 동의하지 않았다. 그가 본질적인 면에서는 소신을 보인 적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는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 시절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는 박 후보의 강력한 쇄신 의지”라고 말했으나, 정작 박 대통령의 기초공천 폐지 공약 파기에는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바로 소신의 실체다.

그럼에도 소신 총리에 대한 대중의 강한 열망이 말해주는 바는 명확하다. 지금 박 대통령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쓴소리와 직언이라는 뜻이다. 오죽했으면 대통령 중심제 권력구조에서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쓴소리 총리의 등장을 국민이 그렇게 믿고 싶어했을까. 대통령과 총리가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국민의 빗나간(?) 정서, 그 자체가 희극이자 비극인 셈이다. 국민의 이런 마음을 박 대통령은 알고 있기나 한 걸까. 안 후보자 낙마 이후의 행보를 보면 별로 그렇지 않은 듯하다. 인사는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에 머물고 있고, ‘망언 교회’에 가서 ‘유병언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번 지방선거를 놓고 ‘박 대통령 지키기’니 ‘박 대통령 버리기’니 하는 말을 하는 것부터가 모두 말장난에 불과하다. 지킬 것도 버릴 것도 없다. 아니 지킬 것이 있다면 책임정치의 정신이요, 버릴 것이 있다면 박 대통령의 오만과 불통, 마이웨이식 국정운영이다. 그리고 박 대통령을 진정으로 지키는 길은 다른 데 있다. 국민이 직접 쓴소리를 해서 자극을 주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꼭 들으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그것이 그나마 쓴소리 총리의 등장을 바라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며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도 부합한다. 눈물은 한 번으로 족하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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