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대희 파동으로 드러난 청와대의 적폐…언론 방조도 원인
KBS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권력…‘한겨레’가 적극 보도를
KBS 틀어쥐고 놓지 않으려는 권력…‘한겨레’가 적극 보도를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는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는 자리에서다.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사고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책임은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는 정중한 사과도 잊지 않았다.
‘철의 여인’이 보인 뜻밖의 눈물이었다. 얼어붙은 민심도 녹아내릴 법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눈물의 효과는 간 데 없다. ‘순결한 눈물’인지, ‘악어의 눈물’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터였다. 그 눈물 이후 대통령의 행보는 그 눈물의 의미를 더욱 헷갈리게 한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가 스스로 물러났다. 그는 거센 민심의 저항 앞에 무릎 꿇었다. ‘공직사회의 적폐를 척결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해’ 청와대가 내놓은 회심의 카드였다. 그러나 그는 청와대 설명과는 동떨어진, 적폐에 이미 깊숙이 발을 담근 인물이었다. 흠집을 축소해보려는 몸짓으로도 민심을 설득할 수 없었다. 그나마 자신의 흠결을 인정하고 끝내 물러선 ‘염치’에 한줄기 위안을 느낀다.
그러나 대통령이 흘린 눈물의 진정성은 어디로 갔는가. 적폐를 해소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믿어도 좋은가. 대통령은 공직사회의 적폐를 제대로 이해하고는 있는가. 새 시대를 열겠다는 대통령의 다짐은 과연 고뇌와 결단의 산물인가. 대통령은 정녕, 갈기갈기 찢긴 민심을 어루만지고 보듬으려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눈물을 흘린 것인가.
‘안대희 파동’은 청와대가 적폐의 본거지임을 입증하고 있다. 나라의 기초를 새롭게 다지겠다는 대통령의 결연한 의지는 없었다. 어떻게든 소나기를 우선 피하고 보자는 속셈만 드러냈다.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은 이번에도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정성을 다해 적임자를 물색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어떤 인물이 분열된 국론을 통합하고 국가에너지를 한데 모을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뇌도 엿볼 수 없었다. 청와대 인사위원회가 제대로 열리기나 했는지조차 의문이다.
깊은 고려 없이 불쑥불쑥 내미는 대책도 해소돼야 할 적폐다. ‘해경 해체’는 상징적이다. 대통령은 절차를 뛰어넘어, 해경 해체를 기정사실화했다. 왜 해체해야 하는 것인지, 그 이후의 대안은 무엇인지도 명쾌하게 밝히지 않았다. 구조 과정에서 무능했던 해경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고 해체에 따른 문제들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법.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후 기자들의 질문 한마디 듣지 않은 대통령의 모습에서는 자애로운 정을 느낄 수 없었다.
이 제왕적 통치스타일이 바뀌지 않으면 두고두고 민심의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국민과 소통하고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는 ‘기본’이 절실히 요구된다. 청와대가 마음먹고 철저하게 변신하면 정부 부처는 저절로 바뀌게 마련이다. 대통령은 적폐의 최고 책임자이자 그 적폐를 해소하는 열쇠의 소유자인 셈이다.
청와대 적폐는 ‘언론의 실종’과 무관하지 않다. 박 대통령의 ‘불통’과 ‘독선’은 사실 언론이 방조한 탓이다. 그 언론계에서 잇달아 나오는 ‘반성문’이 눈길을 끈다. <와이티엔>(YTN)과 <한국방송>(KBS)은 세월호 참극 과정에서의 ‘오보’와 불성실한 취재보도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방송을 내보냈다. <한겨레>와 <중앙일보>도 사설과 기사를 통해 반성의 뜻을 표했다. ‘청와대의 통제’ 사실이 확인된 케이비에스 구성원들의 ‘울분’에 찬 사죄성명도 있었다.
언론계의 집단적인 움직임에서 희망의 싹을 본다. 그럼에도 한쪽에서는 의구심이 피어오른다. 우선 무엇을 반성하는지 궁금하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의 절망과 분노가 참사 관련 보도에 국한되겠는가. ‘언론의 죽음’에 대한 성찰 없는 반성은 진정한 반성이 될 수 없다. 언론의 죽음이 가져온 황량한 현실을 냉정한 눈으로 살펴보는 일이 무엇보다 급하다.
언론이 공익 기능을 포기한 지 오래다. 언론은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권력 감시의 눈초리는 둔해졌다. 권력기관의 헌법 유린행위가 가벼운 ‘일탈’로 치부되기도 한다. 옳고 그름보다는 이해관계에 민감하다. 정의에 대한 불감증은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사람들은 상생의 정신과 배려보다는 치열한 경쟁에 익숙하다.
필자는 염치와 상식이 사라진 야만적 세태를, ‘언론의 죽음’이 야기한 현상으로 강조한 바 있다. ‘진보’와 ‘보수’도 염치와 상식의 품 안에 존재한다. ‘매뉴얼’과 ‘제도’도 상식과 염치가 작동될 때 의미를 지닌다. 정의와 불의도 상식에서 출발한다. 터무니없는 ‘진보’ ‘보수’의 틀에 꿰맞춰 세상일을 보도해온 죄는 없는지 먼저 반성하는 것도 언론의 도리다.
‘몰상식’과 ‘몰염치’는 언론의 감시 대상이다. 권력은 공익을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른바 관피아는 ‘권력 사유화’ 집단의 범주이다. 그동안 관피아는 적폐가 어느 정도 용인돼온 것은 사실이다. 이젠 명백한 ‘몰염치’ 행위다.
‘관행’과 ‘적폐’의 단맛을 지키려는 몸부림 역시 치열하게 펼쳐진다. 케이비에스에 대한 청와대의 ‘보도 통제’가 사실로 드러났다. 이번에 물러난 보도국장의 증언을 통해서다. 길환영 케이비에스 사장은 청와대 통제의 현장 지휘자였음이 드러났다. 이쯤 되면, 그 사장은 시청자 앞에 엎드려 사죄한 후 물러나는 게 상식이자 도리다. 사퇴를 요구하는 사원들에게 그가 던지는 ‘적반하장’이 차라리 안쓰럽다. “좌파노조가 방송을 장악하려 한다.” 너무 뻔뻔하지 않은가. 사장 해임안 처리를 미룬 이사회도 상식을 저버렸다. 지방선거 이후로 해임안 처리가 늦춰졌다. 선거 결과에 따라 처리 방향을 결정하겠다는 속셈이다. 그 얄팍한 산술이 케이비에스에 대한 신뢰도를 더욱 떨어뜨린다는 점은 왜 간과하는가.
케이비에스를 손아귀에서 놓치지 않으려는 얄팍한 술수가 보인다. <한겨레>의 역할이 기대되는 대목이다. 케이비에스는 권력자의 것이 아닌 국민의 방송이라는 범국민적 합의가 새삼 무르익고 있는 시점이다. 케이비에스 사태를 결코 강 건너 불 보듯 ‘중계방송’하는 것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극은 ‘언론의 죽음’이라는 시대적 문제를 제기했다. 언론인들 사이에 그 공감대가 확장되고 있다고 믿는다. <한겨레>의 결연한 자세가 요구된다. 흔들리는 나라의 기틀은 언론의 정상화를 통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고영재 언론인·전 경향신문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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