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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어게인 2012’, ‘눈물의 속임’은 다시 시작되는가

등록 2014-05-26 14:59수정 2014-05-26 16:41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발표 도중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용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대국민 담화 발표 도중 희생자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정용 기자
곽병찬 대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59
2012년 4월 총선을 앞둔 자기연민의 눈물
당신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탁월한 ‘눈물 연출가’ 였습니다
눈물과 함께 총리로 불러들인 안대희,
그때처럼 이번에도 시나리오가 잘 먹힐까요

눈물이라고 다 같은 눈물이 아닙니다. 눈물엔 보통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것과 타인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느껴 흘리는 공감의 눈물이 있습니다. 냉혈한을 두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하지만, 세상에 눈물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로마의 폭군 네로나 독일 제3제국의 히틀러에게도 눈물이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많았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공감의 눈물이 아니라 자기연민의 눈물이었다는 것입니다. 네로는 제 어머니를 죽이고는, 어미가 불행하게 죽은 저의 불쌍한 처지를 비관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히틀러는 자신의 의지가 막히거나 꺾일 때마다 눈물을 쏟았다고 합니다.

당신을 ‘얼음 공주’라고 부를 때 사람들은 당신의 감정선이 메말라 눈물이 없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당신은 여느 사람처럼 눈물이 많은 편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공감이 아니라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는 사실일 겁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주일 동안 당신의 표정은 얼음처럼 차가웠습니다만, 석탄일 이후 툭하면 눈물을 비췄습니다. 그것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논란이 일긴 했지만, 세상에 거짓 눈물이 어디 있겠습니까. 문제는 공감이냐 아니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겠지요.

2012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난파하는 한나라당을 구하는 비상대책위는 사실 당신의 눈물과 함께 출범했습니다. 당신은 비대위원장을 맡고 얼마지 않아 지역구 출마 포기 선언을 합니다. 연말 대통령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 당연한 통과의례이겠지만, 이런 단순 행사를 이순신 장군의 출사표처럼 비장하게 포장해준 것은 바로 당신의 눈물이었습니다. 그날 서울로 찾아온 지역구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참석자가 당신의 정치역정을 되돌이키자 당신은 연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을 배웅하면서도 눈물을 흘렸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역구 포기를 밝힐 때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효과는 만점이었습니다. 이 얄궂은 눈물이 졸지에 한나라당 비상체제의 출범에 임하는 사즉생 각오의 상징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감동적일 수 없는 자기연민의 몇 방울 눈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들어버린 당신은 탁월한 눈물 연출가였습니다.

지난 19일의 눈물도 그 못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의 선장인 당신이 300명 이상의 생명이 수장되어가는 과정을 두 눈 멀쩡히 뜨고 지켜보다가, 한 달 넘게 지나고 나서 갑자기 눈물을 철철 흘릴 때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두고 국민을 울린 백만불짜리 눈물, 눈물과 함께 세월호는 끝났다고 침을 튀겼고, 다른 이들은 악어의 눈물 혹은 눈물의 ‘쇼쇼쇼’라느니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다만 효과는 2012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일부 유족들이 감읍해 눈물을 흘릴 정도였으니까요.

사실 미심쩍은 게 많긴 했습니다. 보통 눈물이 나오면 조건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가 눈물을 닦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영화 촬영이라도 하듯이 눈물이 흘러 떨어질 때까지 그대로 두었습니다. 틀린 이름을 호명하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담화문을 낭독한 뒤 기자들에게 단 한 마디의 질문도 허용하지 않고 냉정하게 돌아설 때까지도 눈물이 얼굴에 흥건했습니다.

그렇게 혼란에 빠트렸던 ‘눈물의 비밀’은 오래 가지 않아 드러났습니다. 참지 못하고 일찌감치 발설한 그의 복심이라는 최경환 의원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22일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 선대위원장 자격으로, 박성효 대전시장 후보 사무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얼마 전 박 대통령이 눈물로 세월호 사고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국민들께 올렸다.” “이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드려야 할 때가 됐지 않나 생각한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의 전폭적 지지로 대통령이 눈물을 닦고 국정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힘과 용기를 주실 것을 각별히 당부드린다.” 과연 ‘박근혜 눈물단지’ 책임자다운 말이었습니다. 그는 2012년 2월의 눈물을 두고도 “총선에 헌신하고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라고 눈물 홍보에 앞장섰던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도대체 이게 할 말입니까.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실종자가 18명이나 되는 상황이었고, 그들을 기다리다 못해 속이 다 썩어들어가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300명 가까운 희생자들 가족들의 고통과 눈물 역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죄책감 속에서 흘리는 국민들의 눈물도 마르지 않았고, 희생자 또래 친구들의 악몽 역시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누구보다 고통스러워하는 교사들의 죄의식과 고통은 날로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 눈물은 놔둔 채 대통령의 눈물이나 닦아주라고요? 사과 한 마디 했다고, 침몰에서 구조에 이르기까지 방관만 했던 이 나라 선장의 눈물을 닦아주라고요? 그는 아직까지 사고 소식을 언제 누구한테 어떻게 보고 받았는지, 거기에 대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진술을 사실상 거부하고 있고 그리하여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진상을 밝히는 데 걸림이 되고 있습니다. 이게 나라입니까? 대한민국은 그런 자들의 나라입니까?

지금 최 의원의 한 마디는 지방선거의 비방이라도 되는 양 곳곳에서 애용되고 있습니다.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자, 박근혜의 눈물을 닦아주자….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었어도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 합니다. 대통령보다 먼저 눈물을 흘린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국사범이 되어 도망치는 유병언씨와 가족의 눈물, 멀뚱멀뚱 쳐다보다 흘린 국무총리와 해양수산부장관과 해경청장의 눈물도 국민들이 닦아줘야 하는 건가요.

대통령의 눈물은 그 주변의 김기춘 실장이나 최씨 같은 사람들이 닦아주면 됩니다. 세월호 침몰이 참사가 되고 재앙이 되도록 당신으로 하여금 수수방관하게 하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지시나 하도록 보좌한 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2012년처럼 당신은 눈물과 함께 안대희씨를 불러들였습니다. 그때는 정치쇄신특별위원장으로, 이번엔 국무총리로 말입니다. 그를 두고 언론들은 ‘국민 검사’ 운운하며 띄우고 있지만, 기대할 게 별로 없는 사람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대통령 주변의 흔한 그런 부류의 인간들처럼, 그 역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지 않는, 그저 그런 출세주의자 가운데 한 사람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런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도, 그는 국세청 세무조사 감독위원회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대기업의 법인세 취소소송을 맡아서 진행했더군요. 생선을 지켜야 할 사람이 고양이 노릇을 한 겁니다.

그에게 ‘국민 검사’의 옷을 입힌 건, 여야를 막론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성역없이 수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이 정권은 출범 후 1년 가까이를 그런 노 전 대통령의 부관참시를 위해 온갖 공작을 다 저질렀습니다. 양식까지 바라지 않습니다. 그러나 최소한의 인간적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집단이 손을 내민다고 덥썩 그 손을 잡는 일은 없을 겁니다. 한번도 아니고 두번씩이나 쪼르르 달려간다면 볼짱 다 본 것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이 정권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수사를 온갖 공작으로 저지하다가 끝내 검찰총장을 쫓아내고, 수사팀 검사들을 자근자근 밟아버렸습니다. 안씨 자신이 몸담았고, 또 그를 키운 검찰은 그런 과정을 통해 권력의 사병 혹은 심지어 청부폭력집단으로 떨어졌습니다.

안씨는 2012년 새누리당 정치쇄신위원장으로서 검찰의 조직과 운용을 정상화하는 공약을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영혼을 담아 마련했다는 이 공약 역시 이 과정에서 휴지조각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 정권, 그런 대통령의 눈물을 세척하기 위해 뛰어들었으니, 더 무슨 평가가 필요하겠습니까.

어쨌든 당신은 참으로 복이 많습니다. 그렇게 잘 포장된 사람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울궈먹을 수 있으니 말입니다. 게다가 눈물 몇 방울이면 수백명이 수장된 참사를 잊게 하고, 가족들의 눈물을 없애버리고, 오히려 당신을 더 동정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모르겠습니다. 2012년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눈물에서 시작해 안대희 등으로 진행되는 시나리오가 잘 먹힐지 말입니다. 기획대로 된다면 당신의 복입니다. 그러나 국민에겐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안고 살아야 하는 화가 될 겁니다. 그런 짓을 시도하는 것도 착잡하지만, 그런 짓이 먹힐 것이라고 믿게 만든 이 땅의 풍토는 참으로 끔찍합니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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