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유럽연합의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에서 인터넷 역사의 주요 이정표가 될 ‘잊혀질 권리’ 판결이 나왔다. 개인 신용정보 등 시효가 지나 부적절해진 정보가 검색엔진에서 계속 노출되는 것에 대해 개인의 삭제 요청권을 인정한 판결이다. 프라이버시 보호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하는 유럽 각국에 맞서 구글과 페이스북 등 미국 정보기술 기업들은 잊혀질 권리가 일종의 검열이라며 표현의 자유와 인터넷의 기술 특성을 옹호해 왔다. 국경을 초월해 이용되는 인터넷 특성에 맞게 각 국가의 법을 수정할 것이냐, 나라별 법적 규제에 맞춰 검색엔진의 서비스 방식을 바꿀 것이냐의 문제였다. 오랜 줄다리기 끝에 구글의 패배로 매듭이 지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개인 정보가 검색엔진에서 노출되어 피해를 일으키는 현상은 기술의 편리함이 드리운 어두운 그늘이다. 검색엔진이 모든 정보를 너무 손쉽게 찾아주다 보니 그동안 감추어져 있던 정보들도 드러나면서 생겨나는 부작용이다. 신용정보법은 파산·연체·체납 등의 사유가 사라지면 해당 정보를 5년 안에 삭제하고 이용할 수 없도록 했다. 한때의 신용상태가 인생 전체를 옭아매지 못하게 한, 일종의 잊혀질 권리다.
인터넷에 올린 내용이 삭제되지 않아 미성년 시절에 올린 글도 평생을 따라다닌다면 개인의 새 출발은 어렵다. 잊혀질 권리는 프랑스에서 유래했다. 18세기 프랑스대혁명 이후 제정돼 근대 사법제도의 기틀이 된 프랑스형법은 최초로 ‘형의 실효’를 도입했다. 처벌을 받은 전과자가 새 출발을 할 수 있게 해준 제도로, 우리 형법에도 반영돼 있다.
에릭 포즈너 시카고대 법학 교수는 잊혀질 권리가 유명인보다 일반인에게 더 필요한 권리라고 주장한다. 언론에 근황이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유명인과 달리 일반인은 한번 노출된 정보가 좀처럼 고쳐지지 않은 채 계속 그의 인생을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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