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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아침 햇발] 다시 북풍으로 으랏차차? / 박창식

등록 2014-05-15 18:40수정 2014-05-15 21:21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냄새가 잔뜩 난다. 국방부가 연일 북한 때리기에 나선 배경 말이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엊그제 북한을 “빨리 없어져야 할 나라”라고 말했다. 이튿날에는 “국가의 기본은 국민을 보호하는 것인데 북한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인권도 없고 어떤 때는 마음대로 처형도 한다”며 “지킬 가치가 없는 나라”라고 말했다.

북한 인권 문제가 비판 대상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정부 부처 대변인이 아예 북한을 ‘소멸 대상’으로 콱 찍고 나선 것은 확실히 심했다. 7·4 남북공동성명과 남북기본합의서 이래 남북한이 실체를 서로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정신, 유엔에 나란히 주권국가로 가입하고 있는 현실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남북 평화를 관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기본 책무를 저버린 막말이고 폭언이다.

더욱 큰 문제는 북한이 새로 도발한 것이 없고, 새롭게 문제 삼을 만한 북한 인권 쟁점도 없었다는 점이다. 우리 국방부 대변인의 선제적 ‘입 도발’이라 할 만하다. 그 배경은 역시 세월호 참사 아니겠는가.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고 여당 지방선거 후보들이 속속 약세로 돌아서자, 북한을 때려 긴장을 유도하고 국민의 눈을 돌리자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은 국방위원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여러 기구가 보복전을 거론하며 반발했다. 미국도 남북 긴장 격화를 우려하기에 이르렀다.

박근혜 정부는 국정 실무에 무능했다. 출범 1년3개월이 되도록 국정 성적표는 보잘 게 없다. 국정원과 군의 대선개입, 엔엘엘 녹취록 공방,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 대응 등에 골몰했지, 그밖에 생산적으로 한 일을 기억하기 어렵다. 경제 민주화와 복지 등의 대선 공약은 대부분 흐지부지되었다.

반면에 여론관리만큼은 매우 정교하게 하였고,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했다. 국정 성과는 빈약한데, 홍보만 빛을 발산해온 셈이다. 홍보 전략의 골자는 북한 때리기와 종북 여론몰이였다. 정부는 개성공단 가동 중단을 무릅쓰고 북한과 대결 태세를 취했다. 박 대통령은 통일대박론과 드레스덴 선언 등을 이어갔는데, 그것도 화해협력과 평화 노선이라기보다는 본질적으로 북한 압박론·붕괴론의 변형이었다. 이석기 내란음모 수사에서 통합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청구에 이르기까지 종북몰이를 펼쳤다. 그 결과 야권은 분열되었고, 기가 죽어 대정부 비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는 국정에 무능하고 여론관리에만 공을 들여온 정부가 실력의 한계를 드러낸 사건으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과거로부터 내려온 잘못된 적폐’를 지적했다. 우리 기업과 사회에는 돈과 이윤, 경쟁과 효율성만을 좇는 적폐가 심각하다. 그러나 정부 대응 태세로 보면, 과거 정부에서 만든 나름의 재난대응 체계를 박근혜 정부가 섣불리 흔들었다가 혼란을 키운 측면이 훨씬 크지 않은가. 역대 정권의 적폐라기보다는 박근혜 정부 들어 짧은 시간에 이례적으로 신속히 축적한 현 정부의 적폐가 한꺼번에 민낯을 드러냈다고 할 상황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대통령부터 공감능력을 회복하고 국정을 크게 쇄신할 것인가, 여전히 정치공학과 여론몰이에 기댈 건가? 국정 쇄신 전망은 밝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초강성 인물이 기용된 게 그렇고, 나름대로 합리적 견해를 대변한다고 알려진 홍보 참모들이 줄줄이 떨려났다. 무엇보다 국방부 대변인의 ‘선제 입 도발’이 ‘북풍으로 다시 한번 으랏차차’를 꿈꾸는 여권 핵심부의 정서를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박창식 연구기획조정실장 겸 논설위원

cspcs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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