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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종구 칼럼] ‘어머니 나라’의 역설적 풍경

등록 2014-05-14 19:07

김종구 논설위원
김종구 논설위원
이른바 ‘나쁜 계모’ 사건으로 세상이 시끄러웠을 때 불경스럽게도 가끔 ‘그분’을 생각했다. 스스로 나라의 어머니를 자처하신 분 말이다. 지난 대선에서 그분이 내건 핵심 개념은 ‘어머니의 나라’였다. 그런데 취임 이후 모습은 자애로운 어머니상과는 아득히 거리가 멀었다. 더욱이 대선 과정에서 반대편에 섰던 사람들은 계모의 모진 홀대와 구박을 받는 의붓자식 처지나 같았다. (이 땅의 수많은 좋은 계모들한테는 진심으로 미안하다.)

그런데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단지 남의 자식에 대해서만 싸늘한 것이 아니었다. 이 땅의 보통 어머니들은 이런 상황에서 눈물의 늪에 빠져 버린다. 스스로 회초리를 들고 자신을 책망하며 종아리를 친다. 하지만 그의 눈에서 쏟아진 것은 눈물이 아니라 레이저였고, 모진 회초리를 들긴 했으나 자신을 향한 회초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책임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에 대경실색하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다.

세월호 사건 이후 박근혜 대통령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 ‘엄벌’이지만 정작 대통령이 받을 벌은 아무것도 없다. 대통령 중심제(책임제) 국가라지만 이런 사건이 나면 대통령은 ‘중심’과 ‘책임’에서 비켜선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국무총리의 사의 표명에 이어 만약 내각 총사퇴 상황이 온다고 해도 그것이 대통령에 대한 회초리는 아니다. 조금 심하게 말하면 내각 개편은 대통령에게는 권력 행사의 기회다. 이제 수많은 사람이 애간장을 태우며 청와대의 전화 한 통화를 기다릴 것이다. 충성을 맹세하며 온몸을 던져 대통령을 보호하겠다는 일념에 불타 있는 사람들이다. 인사 문제를 놓고 골치를 썩이는 것은 권력을 가진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운 고민이다. 누가 무슨 자리를 맡을지에 대한 관심 속에서 비극은 급속도로 잊혀 갈 것이다. 그것이 내각 개편의 정치공학이다.

청와대는 사건 수습의 변곡점을 내일모레로 예정된 대국민 사과 성명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여기까지 오기도 참으로 힘들었다. 국민이 통사정 애걸복걸을 해서 얻어낸 엎드려 절 받기 식의 사과다. 그나마 진정성을 가늠할 포인트의 하나는 기자들과의 일문일답이라도 있느냐다. 대통령으로서는 국민 면전에서 곤혹스러운 질문을 받는 것이 심각한 고통일지 모르지만 그 정도는 많은 어머니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거기다 예전에 청와대 기자단은 회견에 앞서 미리 질문 내용을 건네주기까지 했다. 국민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도 대통령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자리를 떠나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세월호 사건이 난 뒤 사람들의 의식 속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일고 있다. 가족의 소중함과 애틋함, 부와 명예의 부질없음 같은 것에 대한 재발견도 있다. 평소 데면데면하던 아들 녀석이 갑자기 부모를 껴안고 살갑게 굴어서 영 어색하다는 사람도 있고, 아이가 다니는 학원을 끊었다는 학부모의 이야기도 들려온다. 자식이 그냥 살아만 있어도 고마운 세상, ‘문밖이 황천’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세상에서 나타나는 역설적인 아름다운 변화다.

그럼 박근혜 대통령은 변했을까. 그가 내걸었던 모든 약속과 다짐이 산산이 부서진 상황에서 새로운 출발은 새로운 변신이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 검사를 청와대 참모로 기용한 잔인함(내지는 둔감함)에서 나타나듯이 어떤 변화의 기미도 엿보이지 않는다. 안전 불감증 못지않게 위험한 국민정서 불감증은 여전하다.

책임총리, 할 말은 하는 장관, 역동적인 국무회의 등의 중요성도 거론되지만 과연 박 대통령이 그런 필요성을 느낄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세월호 사고는 자신이 내각을 좀더 다그치고 통제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니 그동안 회의 때마다 쏟아지던 깨알이 서 말이었다면 앞으로는 열 말, 스무 말로 늘어날 수도 있다. 새로 지명되는 총리나 장관들도 전임자들의 운명을 지켜보며 오직 위만 바라보며 받아쓰기에나 골몰할 것이 그 동네의 본질적 속성이다. 그리고 권력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심히 작동될 것이다. 세월호를 삼키고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잔인한 바다처럼.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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