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호 정치부장
세월호 참사의 분노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하는 건 불순세력이 정치선동을 일삼기 때문이고, 유언비어가 사람들을 어지럽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불순세력’은 ‘순수 유가족’들과 분리시키고, 유언비어는 발본색원하고, 책임자는 엄벌에 처하고, 국가는 개조한다 하면. 그럼 될까?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가 그토록 가고픈, ‘일상’으로 되돌아갈까?
‘라면에 계란 푼 것도 아니고’, ‘(대통령 사과 안 받아) 유가족에게 유감’, ‘순수 유가족’.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4연타석 발언 중 일부다. 청와대에선 ‘대변인이 불 끄는 게 아니라, 지른다’며 끓지만, 대변인은 본의 아니게 청와대의 인식을 국민에게 잘 ‘대변’해줬다.
대통령은 억울한 거다. ‘내 잘못, 내 책임 아닌데’. 그러니 죄송하지 않고, 죄송하지 않은데 죄송하려니 힘이 들고, 시간이 걸리고, 어색하다. ‘국무회의 착석 사과’면 될 줄 알았으니 그리한 것이지,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 되리라 생각했다면 그리했겠는가? ‘불통’이 아니라 ‘무능’이다.
대통령은 7일 국정원 2차장에 공안검사 출신을 내정했다. 국정원더러 “뼈 깎으라”더니, ‘통뼈’를 붙여줬다. 국내정보 수집 및 분석, 대공수사 지휘에 공안검사. 국민이 만만한 것인지, 만만하지 않으니 이러는 건지.
박 대통령 최고의 정치적 자산은 박정희, 그다음이 ‘원칙과 신뢰’ 이미지다. 지금은 청와대에서도 잘 안 쓰는 용어다. 민망하니까. 새누리당 의원 이야기다. “박근혜의 ‘원칙’은 ‘나한테 이롭냐 아니냐’는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의 ‘신뢰’란 ‘누가 뭐래도 나는 나를 신뢰한다’는 쪽에 가깝다. 참사 이후, 대통령 행동이 굼뜬 데 이 공식을 대입해 보자. 세월호 참사는 박 대통령에게 전자(정치적 이득)와 후자(아집)가 충돌하는 지점이다. 전자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후자를 ‘잠시’ 양보하는 건데, 거기다 ‘진정성’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박 대통령은 해결책으로 국가개조를 내밀었다. 정부가 잘못했는데, 왜 멀쩡한 ‘국가’를 개조하나? 국가의 3요소는 영토, 국민, 주권이다. 간척사업 하자는 건 아닐 테니 영토는 제외하고, 남은 건 국민과 주권인데, 둘 중 뭘 개조하겠다는 건가? 그러니 ‘국가개조’라는 말이 “청와댄 책임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은 “청와댄 재난 컨트롤타워 아니다”라고 두 번 말했다. 처음 말할 때, 대통령이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9일 유가족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가 보이지도 않는 진입로 바깥 아스팔트에 12시간 앉아 있던 동안, ‘비서실장’ 주재 대책회의가 열렸다. ‘정무수석과 홍보수석’이 대통령 대신 유가족을 만났다. 왜 참모들은 건방지게 대통령 ‘없이’, 자기들끼리 결정하고 행동할까? 궂은일은 ‘대통령 없이’ 처리하는 게 대통령을 지키는 일이다. 또 대통령은 그걸 좋아한다는 걸 참모들은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긴급했던 그 한나절 대통령은 뭘 했나? ‘긴급’ 국가소비경제대책회의를 ‘일정이 있어서’ 주재했다. 거기에서 “잘못 보도되고, 왜곡시킨 정보들이 떠돌아다니고, (…) 이대로 나아간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고 읽었다. 참사 최대 ‘왜곡 정보’는 정부가 살포한 ‘전원 구조’였다. 이 유언비어를 놔두고 무슨 유언비어를 발본하고 색원하겠다는건가?
‘새누리당내 개혁파’ 상징처럼 읽히던 ‘남원정’ 맨 앞자리 남경필 경기지사 후보가 10일 후보수락 연설에서 “우리 박근혜 대통령을 지켜내고, 대통령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생명을 다하겠다”고 했다. 경기경찰청장 되어 판교 나들목에서 청와대 진입 막으려 하나? 고이 ‘지키려’ 뽑은 게 대통령인가? 대통령 ‘지키려’ 몸 부서뜨리고 싶지 않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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