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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누가 배를 침몰시키나 / 안선희

등록 2014-04-27 18:31수정 2014-04-27 19:19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1981년 레이건 정부가 출범하면서 ‘규제철폐’는 민영화, 감세와 함께 미국의 주요 국정목표가 됐다. ‘시장은 규제받지 않을 때 가장 잘 작동한다’는 자유방임주의가 배경철학이었는데, 이는 ‘기업들의 이익은 규제받지 않을 때 가장 커진다’는 말로 바꿔도 큰 무리가 없다. 이후 20여년 동안 미국 정부는 기업들의 요구에 맞춰 규제완화에 주력했다. 2004년 부시 정부 시절 미 식품의약국(FDA)이 심장마비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있는 의약품을 승인해준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다. 이를 내부고발한 연구원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이전 상사는 제약업계가 우리 고객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그에게 ‘아뇨, 우리의 고객은 국민이죠’라고 말하자, 그는 내가 틀렸다며 고객은 분명 제약업계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는 1997년 행정규제기본법을 제정하고 규제개혁위원회를 만들어 미국의 규제완화 드라이브를 적극 수용했다. 이후 15년여 동안 꾸준히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정비와, 규제 신설에 대한 ‘감시’가 이뤄졌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친기업)를 내걸고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는 더 힘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의지에 비할 바는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청와대 비서관회의에서 “불필요한 규제는 쳐부숴야 할 원수이자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라고 말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지난달 20일 7시간 동안 생중계된 규제개혁장관회의에서는 초등학교 옆에 관광호텔을 짓게 해달라는 한 개발업자의 요청에 “청년들이 많이 취직할 수 있는 일자리를 다 막고 있는 것은 거의 죄악”이라고 화답했다. 교육부 장관이 난감한 표정으로 “지금도 학교 주변에 호텔이 많아, 등굣길에 유해한 전단지들이 널려 있다”고 말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업주들이 투자를 하는 것은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려는 것이 아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일이니 나무랄 수 없다. 정부가 할 일은 따로 있다. 그 사업이 전체 사회 구성원들의 안전, 건강, 환경 등에 해를 끼치지는 않는지, 혹시 기업이 이윤을 더 남길 욕심에 지켜야 할 규정을 빼먹고 있지는 않은지,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대가는 지급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그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세월호 참사 원인 중 하나로 해운업계 요구를 반영한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부실한 규제적용이 꼽히고 있다. 관련 단체들에 자리를 보장받는 대가로 이런 현실을 눈감거나 조장한 ‘해양수산부 마피아’들에 대한 비난이 빗발치고 있다.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의 본질은 정부가 특정 이익집단과 결탁하는 것이다. 그들은 정부의 역할, 즉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규제당국으로서의 역할을 배신한다. 그렇다면 “규제는 암덩어리”라며 규제 존재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는 박 대통령은 어떤가? 해수부의 한 젊은 공무원은 “국정과제로 규제개혁이 추진되면서 정부 안에서 규제완화 경쟁이 불붙었다. 우리만 ‘안전 강화’를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공무원들에게 “정부의 고객은 국민이 아니라 기업”이라고 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역사학자 토머스 프랭크는 <우파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1980년대 이후 정권을 잡은 미국의 신자유주의자들이 규제 완화, 정부지출 삭감,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냉소 조장 등을 통해 정부 기능을 약화시켜 간 과정을 추적한다. 정부의 약화는 민영화로, 이는 기업들의 이익창출 기회로 이어졌다. 이 책의 원제는 ‘자신의 배를 침몰시키는 선원들’(The Wrecking Crew)이다.

안선희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s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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