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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안철수의 진정성 / 권태호

등록 2014-04-13 18:51수정 2014-04-14 08:55

권태호 정치부장
권태호 정치부장
그날 편집회의는 좀 길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공천 폐지 철회’ 결정이 나던 날(10일), 1면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의견은 나뉘었다. 어찌됐든 스스로 대선 공약을 어기게 됐다는 점을 들어 안철수 대표에 대한 비판에, 또 한쪽은 선거가 양자대결 구도로 재편됐다는 점에 더 주목할 것을 주장했다. 토의는 양자를 종합적으로 담되, 주관적 가치판단은 가급적 배제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회의 뒤, 3면에 배치된 ‘안철수의 생각, 전망’ 기사에는 강한 비판 톤을 유지하자고 기자에게 얘기했다. ‘많은 이슈 중에 일반인들은 관심도 없는 걸 들고나와, 지금껏 도대체 뭘 한 거지?’라는 일반인들의 의문도 짚어줘야 할 것 같았다.

2011년 덴마크는 ‘비만세’(fat tax)를 도입했다. 덴마크 국민 47%가 과체중이었다. 정부는 포화지방산을 2.3% 이상 함유한 모든 식품에 ㎏당 16크로네(3085원)의 세금을 붙였다. 비만세 때문에 국민들의 지방 섭취가 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런데 국민들의 비만율은 변화가 없었다. 대신 물가가 오르자, 덴마크 사람들은 이웃나라인 독일, 스웨덴에 가서 장을 봤다. 덴마크에선 ‘살’이 아니라 ‘소비와 일자리’가 빠졌다. 비만세는 1년 만에 폐지됐다. 의도는 선했지만, 선한 의도가 반드시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안 대표가 기초공천 폐지를 들고나온 건 선의라 본다. 그러나 사람들이 자신의 뜻과 다를 때는 뜻을 접는 게 맞다.

세종은 재위 12년(1430년), 관리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세금이 매겨지는 문제점을 보고, 1결당 10두의 세금을 거두는 ‘공법’이라는 새로운 세법 시안을 마련했다. 세종이 보기에 새 세법은 공정하고 합리적이었다. 백성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나뉘었다. 세종은 찬성 의견이 더 많았음에도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은 걸 보고 “백성들이 좋지 않다면 이를 행할 수 없다”며 미뤘다. 재위 19년 전라도와 경상도를 대상으로 시범실시, 그리고 재위 26년 최종확정했다. 공법을 내놓은 지 7년 뒤에 시범실시, 또 7년 뒤에 전면실시했다.

왕도 이럴진대, 야당 대표가 선거법을 “여당은 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간다. 이번부터”라고 한 건 지도자의 자세가 아니다. 일상생활에도 신념이 강한 사람은 간혹 주변을 불편하게 만든다. 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구현하는 데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러나 안 대표를 과하게 비판하는 것 역시 과하다. 새누리당의 안 대표 비판은 그냥 말을 말자. 현실정치에서 진정성이란 허망한 것이긴 하나, 어쨌든 ‘기초공천 폐지’에 대한 그의 진정성은 믿는다. 기초공천 폐지란, 옛 민주당의 손발을 잘라 당을 접수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악의적 분석을 믿고 싶지 않다. 다만, 안 대표는 더 이상 ‘기초공천 폐지’에 묶여 있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그날 회견장에서 장황하게 기초공천 폐지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읊은 것은 어른답지 않았다.

‘기초공천 폐지’ 여론조사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말했다. “폐지 철회로 나오면 사퇴하는 거 아냐?”라고. 왜 사람들은 안철수를 보며 여전히 조마조마해할까? ‘또 훌쩍 떠나버리는 건 아닐까’라는 우려가 늘 있다. 유시민 전 의원은 “대통령 자리를 목표로 삼는다면, 권력투쟁을 놀이처럼 즐거운 일로 여기면서 그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안 대표에게 ‘기초공천 폐지’를 스스로 뒤엎은 건 큰 아픔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김대중, 노무현 등 역대 정치 선배들이 겪은 것에 비하면 일상다반사에 가깝다. 안철수가 국민들을 걱정하되, 국민들이 안철수를 걱정하지 않게 해달라. 이젠 당면한 일을 당면해야 할 때다.

추신. 똑똑한 후배는 그날 3면 기사에서 선을 넘진 않았다.

권태호 정치부장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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