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철 정치부 기자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부속실장을 지낸 ‘김대중 사람’인 김한정(50) 연세대 김대중도서관 객원교수는 지난해 9월 경기도 남양주로 집을 옮겼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 남양주시장에 도전하기 위해서다. 남양주는 야당이 해볼 만한 곳이다. 지난 대선 때는 득표율에서 51% 대 48%로 민주당이 새누리당에 졌지만, 총선 때는 두 지역구 모두 이겼다. 4년 전 시장 선거에서도 불과 300여표 차이밖에 안 났다.
지난달까지 김 교수 앞에 놓인 가장 큰 산은 야권연대가 없다고 선언했던 안철수신당(새정치연합)이었다. 민주당과 안철수신당의 합당으로 한때 그를 제일 위협했던 정치인 안철수는 이제 강력한 우군이 됐다. 그러나 그의 근심은 이전보다 늘었다. 통합신당(새정치민주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가장 큰 무기라고 생각했던 ‘기호 2번’을 이제 아예 기대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무소속으로 나갈 경우 아무리 추첨 운이 좋아도 기호 5번이다. 등록된 다른 정당(현재 14개)들이 모두 후보를 내면 15번 이후로 밀릴 수도 있다.
게다가 야당 쪽의 시장 예비후보가 벌써 3명이나 된다. 당에서 이들을 교통정리할 수단이 없기에 셋 다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 벌써부터 한명은 안철수 의원과 찍은 사진을 내걸고, 다른 한명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찍은 사진을 홍보물로 사용하고 있다. 신당이 설령 어느 한명을 자기들 후보라고 보증하더라도 일반 유권자들이 똑같은 무소속 후보 가운데 짝퉁 후보와 진성 후보를 구별하기는 어렵다.
김 교수 같은 정치 신인뿐 아니라 현직의 야당 기초단체장들도 다 위험하다. 여론조사기관 ‘리서치뷰’가 얼마 전 서울 강동구청장 선거를 놓고 시뮬레이션 조사를 해봤다. 민주당 소속인 이해식 구청장은 서울시에서 재선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단체장으로 분류됐지만, 기호 2번을 뗀 무소속 후보가 되고 야권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한명 더 나올 경우 새누리당 후보에게 모두 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거에서 공정하게 겨뤄서 이기고 지는 것은 후보자 및 정치세력의 실력이자 국민의 뜻이다. 하지만 게임의 룰이 애초부터 다르게 적용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여당 대표선수는 공천이라는 선발 과정을 거친 뒤 중무장(기호 1번)을 갖춰 링 위에 오르는 반면에 야당 후보는 무장은커녕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그것도 자기편끼리 서로 발이 뒤엉킨 채 출전하게 된다. 그 결과는 보나 마나다.
지방선거 공천의 폐해가 많기에 공천을 하지 말자는 견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나, 전체적인 룰이 고쳐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의 한 당사자가 독자적으로 다른 룰을 적용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국민의 뜻이 크게 왜곡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약속을 어긴 여당과 달리 완패하는 일이 있더라도 지난 대선 때의 공약을 지킴으로써 신뢰를 얻겠다는 계산인 듯하다. 대통령부터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시대에 자기 말을 지키려는 이런 모습은 가상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무책임하다. 자칫 정부 여당의 독주를 용인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부를 수 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어울려 즐기는 동호인 모임이 아니라 정권 획득을 목표로 하는 정치조직의 태도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독자적인 룰 변경(기초 공천 포기)을 하려면 당원들에게 의견을 다시 물어야 한다. 지난번에 민주당의 전당원 조사는 여야 공동으로 공천을 하지 말자는 것이었지 독자적으로 포기하자는 물음이 아니었다. 여당이 공천하는 상황에서도 공천을 할지 말지를 김한길, 안철수 두 지도자 등 당 지도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새정치가 아니다. 이제라도 당원들에게 다시 물어야 한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안철수, ‘배제적 외연 확대’ 말아야 [오피니언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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