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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옵트인과 옵트아웃 / 김회승

등록 2014-03-18 21:09수정 2014-03-18 22:20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
몇 년 전만 해도 땅 사라, 빚내라는 스팸 전화가 오면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느냐고 되묻곤 했는데, 요즘은 그러려니 한다. 지금까지 내가 스스로 주민번호와 전화번호 적고 가입한 웹사이트만 수십개고, 한곳에서만 평균 100개 제휴업체와 정보를 공유한다고 하는데, 최초 유포지를 찾는 것 자체가 부질없단 생각이 들어서다. 그냥 내 개인정보는 대한민국 전체가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지 싶다.

돌이켜보면 개인정보를 이용한 광고성 전화와 문자의 경우 나름 엄격한 ‘사전 규제’가 있었다. 수신자가 사전에 광고수신에 동의해야 하는 ‘옵트인’ 규정이 그것이다. 업계에선 명백한 거부의사가 없으면 동의한 걸로 치는 방식(옵트아웃)을 주장했지만, 논란 끝에 사전 동의 방식이 기본값으로 정해졌다. 하지만 사실상 거부가 불가능한 ‘강제적 동의’, 한 곳에서의 동의가 수백개 제휴업체에도 적용되는 ‘포괄적 동의’ 같은 편법이 판치면서 이 사전 규제는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금융당국이 얼마 전 개인정보보호 종합대책을 내놨는데, 주민번호 입력 때 창구 직원이 볼 수 없게 하는 것 따위를 버젓이 대책이라 내놓는 걸 보면, 아직 멀었지 싶다. 창구 직원 모르게 적어넣은 내 주민번호가 신용정보까지 더해져 잘 정리된 엑셀파일로 장사치들한테 팔리는 마당 아닌가. 담장이 다 무너진 마당에 현관문에 쇠창살 달겠다는 식이다. 지금이라도 개인정보의 ‘마스터키’ 구실을 하는 주민번호 등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내놔야 한다.

하지만 당국의 태도는 뜨뜻미지근하다. 논리는 이렇다. “금융의 본질은 정보 장사다. 정보를 종합해 신용위험을 측정해 위험관리를 하는 게 본업이다. 그걸 모두 영업용이라고 매도하면 신용평가는 불가능하고 담보 장사만 하는 시대로 돌아가야 한다.” 교각살우라는 얘기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얼마 전 금융의 미래를 논해야 할 때에 금융의 기본을 지키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 현 상황을 “금융의 위기”라고 토로했다. 가장 기본적인 시장의 기본 규율이 흔들리는 문제다. 규제 강화 차원이 아니라, 금융의 신뢰를 건 대수술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규제를 경제 활력을 갉아먹는 암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 규제에는 이유가 있다. 정보유출 사고 이후 정부가 규제 대책을 마련하듯, 필요에 의해 생기고 개선되고, 혹은 사멸하는 게 순리다. 규제가 만들어지면 보호받는 이익과 동시에 그 반대의 이해관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국가의 규제는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 불특정 다수가 수혜자여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각종 수도권 입지 규제는 투자와 개발을 제한하지만, 환경 파괴와 지역간 불균형, 서민 주거 불안 등의 기회비용을 덜어준다. 시장 논리로 규율하기 힘든 영역을 보완하는 정책적 판단인 것이다. 박 대통령은 특히 공익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큰 보건의료·환경·부동산 관련 규제를 손보겠다고 한다. 장기적인 공익보다 임기 중 성과에 대한 조급함이 앞서면 엠비 정부의 4대강 사업처럼 미래 부담만 키울 뿐이다.

원칙적으로 사전 규제, 진입 규제는 그 문턱이 낮을수록 좋다. 모든 문제를 사전에 관리하고 차단하지 않으면 혼란이 생길 것이란 ‘관리 패러다임’은 이제 낡은 행정이다. 단, 그에 상응하는 사후 규제의 틀을 엄격히 해야 한다. 현실은 어떤가. 화학물질 사고를 내면 매출액의 최고 5%를 과징금으로 물리겠다고 하니 “(기업들엔) 사형선고와 다름없다”고 쌍심지를 켜지 않는가. 규제도 피하고 책임도 지지 않겠다니. 회사 문을 닫을 정도의 징벌적 과징금과 집단적 손해배상제는 규제 완화의 전제이자 출발점이다.

김회승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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