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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편집국에서] ‘많이 알면 다치는’ 청와대 / 김종철

등록 2014-02-19 18:51수정 2014-02-19 21:14

김종철 정치부 기자
김종철 정치부 기자
‘네가 이 자리에서 지금 하는 말이 내일 아침 <워싱턴 포스트>나 <뉴욕 타임스> 1면에 보도될 수 있다. 신문에 나도 문제없는가?’ 미국 클린턴 정권 1기 때 백악관 대변인 등 공보 분야에서 핵심으로 일했던 조지 스테퍼노펄러스가 쓴 자서전 <너무나 인간적인>에 나오는 내용이다. 백악관 참모들이 내부 회의를 하기 전에 늘 되물었던 질문이라고 한다. 항상 당당하게 일했다는 자랑이기도 하지만, 백악관이 그만큼 투명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른 나라 권력 실세들이 일하는 모습이 새삼 떠오른 것은 온통 비밀투성이인 청와대와는 너무 대조적이어서다. 얼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NSC) 안보전략비서관이 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갑자기 통일부로 다시 돌아간 ‘천해성 사건’은 청와대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통일부의 필수 핵심 요원이어서 통일부 업무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다시 돌려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했지만, 그것이 말이 안 된다는 점은 세상이 다 안다. 통일정책실장으로 있던 천씨가 청와대 비서관으로 발탁됐을 때 통일부 전체가 환영 분위기였던 반면에 그의 복귀가 발표됐을 때 모두 경악했던 사실만 봐도 청와대 해명이 거짓임을 알 수 있다. 거짓 발표인 것은 분명한데 실제로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누구도 모른다.

박근혜 정권의 미스터리는 큰 것만 따져도 벌써 세 번째다. 첫 번째는 인수위 시절인 지난해 1월 터진 ‘최대석 사건’이었다.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는 통일·안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박 대통령의 가정교사 역을 맡았던 인물로 이 정부 초대 통일부 장관으로 가장 유력했다. 하지만 그는 인수위원으로 임명된 지 엿새 만에 “일신상의 이유”를 남기고 인수위에서 사라졌다. 북한과의 접촉을 놓고 국정원과 갈등을 빚었다는 설만 있을 뿐 박 대통령의 총애를 받던 인물이 하루아침에 밀려난 이유는 아직까지도 의문으로 남아 있다. 홍보기획비서관에 내정됐다가 대통령 취임식 날 오후에 보따리를 쌌던 ‘이종원 사건’도 마찬가지다. <조선일보> 부국장을 지낸 이 내정자가 출근 하루 만에 청와대에서 자취를 감춘 내막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몇달 뒤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장에 취임함으로써 최소한 이 내정자의 잘못이나 실수 탓은 아니라는 점만 확인됐을 뿐이다.

청와대의 비밀은 이런 것만이 아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면 칼같이 퇴근하는 대통령이 누구랑 밥을 먹는지, 누구와 주로 대화하고 협의하는지도 미궁이다. 심지어 김기춘 비서실장의 아들 문제도 그가 크게 다쳐서 병원에 있다는 사실 이외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지금 상태는 어떤지 등 모든 게 기밀처럼 취급되고 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정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의문이 있어도 진상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어보면 전부 모르쇠다. 여권의 한 인사는 “청와대에서는 공식 발표 이외에 다른 내용을 알아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금기다. 그런 것에 관심을 기울이다가는 다친다는 것을 지난 1년 동안 다들 체득했다”고 말했다.

물론 청와대에 비밀이 많은 것은 과거 독재정권처럼 음습한 일을 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정부 때의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등 정치공작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청와대가 내놓고 권력을 불법적으로 행사하는 시대는 지났다. 그보다는 모든 정보가 대통령 한사람한테로 집중되고, 모든 결정을 박 대통령 혼자 하는 데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대통령에게 올라가면 모든 게 뒤집힐 수 있는데 어느 누가 자신있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겠는가. 자율성이 없는 조직에서는 아랫사람의 능동성과 창의성을 기대할 수 없다. 대신 ‘많이 알면 다친다’는 그릇된 처세술과 ‘시키는 일만 하자’는 요령만 판치게 된다. 자율 없이는 투명할 수 없다.

김종철 정치부 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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