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삼성·현대차 그룹의 매출액이 국내총생산(GDP)의 35%다’
이런 제목의 보도가 나올 때마다 뒤따르는 논란이 있다. 해외 매출이 70%를 웃도는 기업에, 부가가치의 총합인 지디피 개념에, 기업의 국내 생산 매출액을 단순 합산해 비교하는 건 잘못이라는 거다. 맞는 말이다. 굳이 통계적으로 합리성을 찾는다면 전체 국내 기업과 비교하는 게 맞다. 2012년 기준 국내 전체 기업 매출은 4200조원이다. 삼성·현대차 두 그룹 매출이 480조원쯤 되니, 비중은 11%를 조금 웃돈다. 같은 기준으로, 영업이익은 전체 기업의 22.4%, 순이익은 35%가량이다.
이렇게 보면 사정이 조금 나아 보일까? 2008년 두 그룹의 영업이익 비중은 11%, 순이익 비중은 10%였다. 불과 5년 새 이익 비중이 몇배로 커지고, 매출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이익이 늘어난 것이다. 물론 수익성은 기업의 생산성이 좌우하는 것이니, 두 그룹이 장사를 잘한 거라고 보면 단순하다. 문제는, 기업 생태계의 수익배분 구조의 쏠림, 덩치 큰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가는 구조가 더 심해졌다는 점이다.
대자본·대기업 쏠림은 민간 시장만의 일이 아니다. <한겨레>는 얼마 전 ‘대기업으로 흐르는 나랏돈’ 기획 기사를 연재했다. 수십조원의 현금을 갖고 있는 대기업에 정부가 연구개발비를 지원하고, 저금리 정책자금을 빌려주고, 뭉텅뭉텅 세금을 깎아주는 현실을 꼼꼼히 들여다보자는 취지였다. 2012년 한해 민간기업에 지원한 연구개발 예산의 40%, 정책자금 대출의 76%, 각종 공제감면 혜택의 75%를 대기업이 가져갔다.
독점적 이윤을 추구하는 게 대자본의 속성이라면, 그로 인한 불균형을 규율하는 건 국가와 정부의 몫일 게다. 핵심은 세제와 예산을 통해 국가 자원을 재분배하는 것일 텐데, 나랏돈 씀씀이조차 대기업에 집중되는 비정상이 고착화되어 있는 셈이다.
기사에 대한 부처 반응은 이례적으로 예민했다.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미래창조과학부·금융위원회 등에서 10여건의 해명 자료를 쏟아냈다. 해명 요지는, 대기업이 외국에 낸 세금이 중복 계산됐다거나, 중소기업 지원액과 지원율이 축소 집계됐다는 것 등이다. 씁쓸했다. 취재팀은 대기업에 지원되는 나랏돈의 데이터와 자료들은 쉽게 구하지 못했다. 나랏돈 집행을 총괄하는 기재부조차 민간기업에 지원하는 정부 예산이 얼마인지 일상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부처 간에 연계 시스템도 없었다. 정보공개를 청구하면 ‘그런 자료는 취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십명의 국회의원 등을 통해 취합한 자료들을 여러 날 공을 들여 산출한 통계였다.
관련 부처들은 불과 하루이틀 사이에 관련 통계를 모조리 취합해 내놓는 순발력을 보였다. 사실관계를 왜곡하는 해명도 많았다. 정책금융기관의 중소기업 지원액에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이게 훨씬 크다)을 끼워넣고 신규대출이라고 우기거나, 실제보다 낮게 집계된 대기업 비중을 공식으로 정정하는 대신 은근슬쩍 수정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시시비비를 떠나 마음이 무겁다. 우리 경제의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자는, 경제 불균형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함께 고민하자는, 기사의 본래 취지는 전달되지 못해서다. 북유럽 모델이니 사회적 시장경제니 하는 거창한 경제 모델을 논하기 앞서, 지금 국가 자원을 배분하는 원칙과 룰부터 성찰해보자는 뜻이 전달되지 못해서다. 얼마 전 만난 원로 경제학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장남의 성공에 온 식구가 매달린 적이 있다. 장남을 위해 누이는 취직하고 차남은 학업을 포기했다. 집안의 모든 걸 장남에게 몰빵했다. 현실은 어떤가. 성공한 오빠는 제 몫이 우선이고, 생계가 아쉬운 동생들과 힘빠진 부모는 장남한테 쩔쩔매며 산다. 우리 경제가 딱 그 꼴이다.” 부모라면 더 늙기 전에 제 몫을 해야 한다.
김회승 경제부 정책금융팀장 hon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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