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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특별기고]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 / 윤구병

등록 2014-02-13 19:05수정 2014-02-14 16:46

윤구병 농부철학자
윤구병 농부철학자
‘좌익효수’라니?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까지 재갈을 물리겠다는 말인가? … 이런 짓이 ‘대선’ 기간 동안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국정원’이 ‘수행’했어야 할 ‘정상업무’인가? 끔찍하기 그지없다.
믿거나 말거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도 좋을 이야기) ‘온조’와 ‘백제’는 같은 말이다. ‘백제’는 토박이말로 옮기면 ‘온제’다. ‘100’이 ‘온’이니까. ‘제’는 ‘어제’, ‘그제’ 할 때의 ‘제’와 같다. ‘온제’는 오래오래라는 뜻이다. ‘만세’, ‘반자이’, ‘롱 리브(더 퀸)’, ‘비바’ … 다 같은 뜻이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에게 오래 살라고 ‘백성’들이 바치는 알랑방귀다. ‘온조’는 ‘온제’와 같다. (홀소리가, 모음이 하도 정신없이 왔다 갔다 바뀌는 바람에 옛 히브리 사람들이 아예 모음을 빼 버리고 자음으로만 기록을 남긴 까닭은 여기에 있다.) 옛날 ‘백제’라는 나라를 세운 우두머리에게 ‘오래오래 잘 살아요’ 하고 외치던 말이 어느새 나라 이름으로 바뀌었다면 허튼소리 하는 건가?

이 나라에 사는 많은 사람들의 무의식 속에 북녘은 ‘김일성 나라’, 남녘은 ‘박정희 나라’로 못 박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대한민국 만세’를 ‘박정희 만세’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김일성 만세’로 잘못 알아듣는 ‘환청’이 생긴다는 걸 이상하게 여길 까닭이 없다. 잠깐, 축구 강국 골문에 공 하나만 차 넣어도 ‘만세’를 부르는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자유 민주주의 국가’다. 그런데 모든 국민이 ‘자유’를 누리고 있는가?

얼마 전에 <팩트 티브이>라는 곳에서 기막히는 꼴을 보았다. 열살 난 딸을 둔 한 어머니가 제 손으로 삭발을 하면서 ‘내 딸을 지켜 달라’고 하소연하는 모습이었다. ‘망치 부인’으로도 알려진 이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지난 대선 때 ‘당신 딸을 납치하고 성폭행한 뒤에 토막쳐 죽이겠다’는 식으로 ‘에스엔에스’(SNS)에 으름장을 놓은 이른바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들임이 드러났는데도 제대로 된 ‘사법처리’가 안 이루어지고 그 사람들이 대낮에 활보하고 있어서 지금도 온 가족이 문을 세 겹으로 걸어 잠그고 밤낮으로 두려움에 떨고 있다고 한다. 이것이 ‘현 정부’가 다스리는 ‘대한민국’의 실태다. (나는 ‘현 정부’를 ‘박근혜 정부’라고 못 박지 않겠다. 이 정부가 ‘다시 이명박’ 정부인지, 김기춘 정부인지, 남재준 정부인지, 뒤에 숨은 누구의 정부인지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주의’ 이야기가 나왔으니, 평균 대한민국 국민이 누리고 있는 자유가 진짜 자유인지 한번 따져 보자. 여기 장터를 휘젓고 다니는 건달 야바위 노름꾼이 있다. ‘잘 봤다, 못 봤다…’ 설레발을 늘어놓으면서 꼭 같은 물건을 상표만 바꾸어 놓고 다른 물건이라고 속인다. 그리고 이걸 고르든 저걸 고르든 당신의 자유라고 떠벌린다. 고르지 않을 ‘자유’는 없다. 반드시 어느 하나를 골라야 한다. 결과는 같다. 그래도 고르지 않으면 목에 풀칠할 길이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야 실감이 나려나. 가까이 있는 ‘편의점’에 가 봐라. 빚 얻어 대학 등록금 마련해 졸업을 하고도 일자리가 없어서 밤새 ‘알바생’으로 일하는 젊은이들을 볼 수 있다. 일할 뜻도 힘도 있으나 일자리가 없어서 거리를 헤매는 젊은이들이 300만이 넘는다. 겨우 일자리를 얻어 보았댔자 절반이 넘게 ‘비정규직’이다. 이런 끔찍한 ‘자유’가 ‘미래 세대’를 기다리고 있다. ‘알바생’이나 ‘비정규직’이나 거기서 거기다. 둘 다 수렁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어쩔 수 없이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고른다 치자. ‘네가 자율적으로 그걸 선택했으니 책임은 너한테 있다.’

이게 ‘정답’ 찾기에 식은땀을 흘리면서 교과서적인 지식으로 중무장한 젊은이들이 거치는 이른바 ‘민주적 절차’다. 이것을 철학에서는 ‘우연의 자유’라고 한다. 자유의지가 막다른 골목에 부딪쳤을 때 무력화되는 ‘무늬만의 자유’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 나라는 어느 나라인가? 중국인가? 일본인가? 러시아인가? 북아메리카 합중국인가? 아니다. ‘대한민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다. 거리로 따져 서울에서 평양이 서울에서 부산보다 더 가깝고 신의주에서 평양보다 평양에서 서울이 더 가깝다. ‘대한민국’이 잘되기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는 사는 데 큰 도움이 안 되는 운동 경기에서 이겼을 때마저 두 손 번쩍 들고 ‘대한민국 만세’를 부른다. 그러나 아무리 ‘대한민국’이 잘살려고 애써도 가까운 이웃 나라가 못살면 그 그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하물며 그 ‘이웃’이 보통 이웃이 아니라 수천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한 민족임에랴. ‘한반도’(‘조선반도’)의 남녘이 잘되어야 북녘도 잘되고, 북녘이 평화로워야 남녘도 평화로울 수 있다.

1945년은 ‘해방’과 ‘광복’의 해가 아니다. 우리 민족을 36년 동안 옥죄던 제국주의 일본을 대신해서 ‘소련’ 제국주의 세력이 38선 이북을 점령하고, ‘미제’가 38선 이남을 점령한, 그래서 한 나라를 두 동강 낸 치욕의 해이다. 우리 민족의 뜻에는 아랑곳없이 무력으로 이 땅에 쳐들어와 제멋대로 이 나라를 남과 북으로 토막친 이 제국주의자들은 남북으로 갈린 형제들 손에 총을 쥐여 주고 총부리를 맞대라고 부추겼다.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알 길이 없는 갓 열다섯살 난 청소년까지 전쟁터로 몰아내어, 한집안에서 형은 ‘국방군’에 아우는 ‘의용군’에 끌려나가 서로 죽이고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6·25 전쟁’의 실상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애꿎게 죽어 갔던가. 한마을에서 오순도순 평화롭게 살던 이웃이 부모와 형제를 죽인 원수가 되어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가슴에 ‘원한’을 품어 왔던가. (참고삼아 말하자면 나는 전쟁이 일어난 지 석달 만에 열다섯살밖에 안 된 여섯째 형을 비롯해서 형 여섯을 잃었다. 비극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후유증으로 열두살 때 어머니를 잃고, 형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25’ 때 여덟살이었던 내 나이 어언간 일흔이 넘었는데 아직도 이 땅에는 전쟁의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종북’이 무엇인가? ‘대한민국’과 마찬가지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도 어엿이 독립된 국가로서 유엔의 회원국이다. (한 민족이 둘로 갈라져 딴 나라를 이루는 지구상 마지막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가슴 아프지만 현실은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

정말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면 북녘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종북’ 몰이는 당장 그쳐야 한다. (‘좌익효수’라니?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까지 재갈을 물리겠다는 말인가? 아니, 그저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만은 성이 안 차서 ‘목을 베어버리는’(효수) 물리적인 폭력까지 마다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이런 짓이 ‘대선’ 기간 동안에 ‘국민의 혈세’를 쏟아부어 ‘국정원’이 ‘수행’했어야 할 ‘정상업무’인가? 끔찍하기 그지없다.)

엄연한 국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이적 단체’로 규정하는 ‘국가보안법’은 하루빨리 없애야 한다. ‘북아메리카 합중국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중화 인민공화국 만세!’ ‘러시아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면 욕을 먹고 손찌검을 당할지언정 손목에 쇠고랑을 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왜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면 ‘이적 행위’로 몰아 ‘빨갱이 사냥’을 하는가? ‘중국’은 빨갱이 집단이 아닌가? 러시아는 빨갱이 집단이 아닌가? 왜 어떤 나라 체제는 문제 삼지 않으면서 다른 나라 체제는 문제 삼아야 하는가? 이 나라를 동강낸 다른 나라들은 ‘적’이 아니고, 어쩔 수 없이 동강나서 ‘대리전쟁’에 이끌려 든 한 형제만 ‘적’인가? 북녘에서 민족의 긍지를 높여 주는 장한 일을 했을 땐 ‘조선 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불러 주면 어디 덧나는가?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은 이럴 때 써야 제격 아닌가?

윤구병 농부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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