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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안철수에게 혁신을 묻다 / 한귀영

등록 2014-02-04 18:47수정 2014-02-07 09:51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대개 지방선거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의 성격을 띠곤 하는데 이번에는 좀 다른 듯하다. 민주당의 박근혜 정부 심판론에 대해 새누리당이 지방정부 심판론으로 물타기를 하고, 안철수 세력은 구정치 심판론으로 양당을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세간의 관심도 야당 간 경쟁에 가 있다.

야권이 분열하면 여권이 반사이익을 취하리라는 불안감은 마땅하다. 하지만 야권의 혁신경쟁 역시 미룰 수 없는 절박한 과제다. 성찰과 혁신을 동반하지 않는 야권연대로는 명분은 물론이고 선거 승리라는 실리조차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지난 대선에서 확인하지 않았던가? 안철수 신당이 내세우고 있는 혁신과 새정치에 기대를 거는 이유다. 하지만 불안하고 미덥지 못하다. 그의 새정치가 답답한 현실을 깨는 치열한 실천이 아니라 정치적 수사로 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왜일까?

혁신은 당연시되어왔던 통념과 관행을 깨는 실천이다. 당연히 그 속에서 재생산되어온 기득권 체제도 흔들린다. 기성체제의 문법에 균열이 생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체제의 유지에서 이익을 얻던 집단들한테는 불이익이 가지만, 차별되고 배제되었던 이들에게는 목소리가 부여된다. 이들이 새정치를 지지하게 되는 이유다. 하지만 정치인의 옷을 입은 이후 안철수 의원이 보여준 행보는 이런 의미에서의 혁신과는 명백히 거리가 있다.

돌이켜 보면 민중들이 안철수라는 인물에게 매혹당했던 것은 그가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실천, 다른 존재방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조용히 공익을 실천해온 그의 삶은 탈세나 부패쯤은 승자의 전리품으로 간주해온 기성세력과는 확연히 대비되었다. 그가 구사하는 조용한 화법, 담백한 언어조차 화려한 언변과 논리로 무장한 기성 정치인들과 대조되면서 울림을 주었다. 적어도 안철수는 주류 기성집단과 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기성질서에 틈을 만들어냈으며, 불화를 낳는 존재가 되었다. 청년세대를 포함해 소외되고 배제된 이들이 이 틈 사이로 조심스럽게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구태정치에 신물이 난 중산층 상당수도 안철수표 혁신에서 자신의 정치적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어했다.

하지만 그동안 안철수 의원이 보여준 모습은 통합이라는 명분하에 가치와 노선에 입각한 정치를 외면했고,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입장 표명에서 드러나듯이 양비론을 통한 거리두기였다.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안철수 신당이 끌어들이고자 하는 인사들의 면면은 전혀 매력적이지도, 새롭지도 않다. 그는 차이, 틈, 불화를 통해 전복적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새로운 길보다는 탈이념, 중도실용 등 기존의 주류 정치문법을 따라가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듯해 보인다.

통합이라는 명분하에 엄연히 존재하는 차이를 덮는 것은 기득권, 지배자의 통치방식이다. 그 반대편에 있는 피지배자의 정치는 불화와 소란의 존엄성에 기반하고, 은폐되는 차이와 균열에 합당한 실존을 부여함으로써 성립하고, 성공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정치다.

지난 대선에서 당시 박근혜 후보는 복지국가, 경제민주화라는 어젠다를 기꺼이 차용함으로써 상대를 모방하고 차이를 무화했다. 기득권의 통치는 그런 식으로 성공할 수 있다. 소수 세력, 비주류 세력이 그 흉내를 내다간 아무것도 안 된다. 안철수 의원이 그토록 치열하게 공감했다던 ‘벼랑에 선 사람들’ 편으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래서 지방선거가 진정한 혁신경쟁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 무엇보다 안철수 신당이 혁신이 유발하는 차이와 불화를 기꺼이 즐기길 바란다. 그로 인한 전복을 두려워하지 않기를 바란다.

한귀영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 연구위원hgy421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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