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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김선주 칼럼] 레임덕은 2년반 뒤에 시작된다

등록 2014-02-04 18:46수정 2018-05-11 15:15

김선주 언론인
김선주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 스토커도 아닌데 나는 하루에도 열두번씩 그를 생각한다. 어떤 때는 온종일도 생각한다. 청와대 코앞에 살고 있어서라고 치부해 버릴 수 없는 것이 전임 대통령이 살 때는 거기 그가 산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이 그 앞을 지나다녔기 때문이다.

아침에 몇 시에 일어날까, 아침 먹기 전에 누구랑 만났을까, 아침은 누구랑 먹었을까, 하루 일과가 끝나면 누구랑 만나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책을 보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 텔레비전을 보는지, 인터넷을 들여다보는지, 잠이 안 올 때는 혼자 술이라도 한잔 하는지, 그런 모든 것이 궁금하다.

일상만이 아니다. 그가 하는 말이 그가 평소 생각했던 말인지, 아니면 누구한테 자문하고 하는 말인지,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라면 몇번이나 곱씹으면서 어떤 궤적을 거치며 나오는 말인지도 궁금하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했지만 그 대박을 위해 자신이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어떤 계획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지, 구체적 이미지를 갖고 하는 말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그 모든 것이 베일에 싸여 있고 전혀 캐릭터가 잡히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정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독재자였던 그의 아버지도 인간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주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아버지 흉내 내는 것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과거의 대통령들은 그들이 하는 말과 말투에 성정이 드러나 있어서 설득의 몸짓이나 소통의 몸짓, 자신의 말을 이해시키려는 태도가 묻어나와 대통령의 캐릭터가 국민에게 분명하게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모든 상황에 대해 단답형으로만 대답한다. 대통령이 구구절절 말이 많은 것도 피곤하지만 준비한 말 이외에는 단답형으로만 대답하는 것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표로 당선된 대통령으로서의 자세는 아니다.

무엇보다 궁금한 것은 그가 자신의 퇴임 뒤에 어떤 인생을 꿈꾸고 있는지, 어떻게 여생을 보내고 싶은지, 어떤 대통령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지이다. 허심탄회하게 이 모든 것에 대해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할 상대가 있는지, 자신과는 의견이 다른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밤새 붙잡고 의견을 조율하고 상대방 의견을 귀 기울여 듣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한 일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박근혜라는 사람, 여성, 대통령 등 자신이 가진 많은 정체성과 관련해 또는 미래에 대해,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엿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임기는 5년이다. 훌쩍 1년이 지나가고 있다. 불법 관권 개입 선거라는 비난과 퇴진운동까지 벌어지긴 했지만 어차피 임기는 2018년 2월에 끝난다. 2017년은 대통령선거로 소용돌이칠 것이고 2016년 가을이면 이미 대선 국면에 접어든다. 그렇다면 딱 정확하게 2년6개월, 대통령으로서 할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기간이다.

나는 ‘박근혜 하야’라는 구호가 싫다. 어렵게 얻은 지금의 정치체제가 흐트러지는 것이 싫고 두렵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과 6·25를 거치고 자유당 독재정권과 4·19 끝에 군사쿠데타에 의해 헌정이 중단되고 파괴되었다. 어렵사리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이라는 대통령을 거치며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고 정권교체를 이루어낸 시대에 산 것을 행복하고 뿌듯한 내 인생의 한 축으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전방위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던 것을 유야무야 넘기고 간다면 대통령 퇴임 뒤에 그에겐 끝까지 독재자의 딸, 관권선거로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는 딱지가 붙어다닐 것이다. 그의 재임 기간에 모든 궁금증 중 하나라도 풀릴 기미는 지금으로서는 없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그에 대한 관심을 끊지 않는 것은 아직도 그에게 좋은 대통령이 될 2년6개월의 기회가 남아 있다고 믿고 싶어서이다. 물건너갔다고 하기에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대통령이라면 정치적 반대세력일지라도 위기 상황에서는 다 한편이 될 수 있는 선량하고 애국심 강한 국민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어야 한다. 어렵사리 쟁취한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국민에 대한 신뢰와 자부심 없이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만 치부하고 있는 듯한 대통령의 행보가 안타깝기만 하다.

김선주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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