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김호의 궁지] 경마장 가는 길

등록 2014-02-03 18:45수정 2014-02-03 21:32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장면 1. 경마는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국무총리 소속)법 제2조 1항에 따라 카지노와 함께 대표적 사행산업으로 분류된다. 사행산업 관련 통계(2013. 6)를 보면 경마는 카지노(12.6%, 2조4000억)의 3배가 넘는 규모(40.1%, 7조8000억)로 국내 사행산업 매출 1위다. 그런데 화상경마장(마권 장외발매소)은 국내법상 탁구장, 예식장과 같은 문화집회시설로 분류된다.

장면 2. 도박피해자 모임 ‘세잎클로버’ 홍덕화 공동대표는 과거 경마도박으로 사업과 가정이 파괴된 경험이 있다. 그는 30개에 이르는 화상경마장의 각종 범죄 유발 가능성을 들어 5~6개로 대폭 줄이자고 주장한다.

장면 3. 2006년 9월. 당시 한나라당 이계진, 민주당 손봉숙, 민노당 강기갑 의원은 공동 기자회견에서 원주 경마장 장외발매소 승인 과정에서 정부가 허위 보고서를 작성해 경마도박을 확대했다고 비판했다.

장면 4. <중앙일보>는 2005년 충남 천안시 화상경마장 주변이 불법주차 천국, 유흥지대로 바뀐다는 보도를 내보냈다. 2008년 <동아일보>는 ‘서민층 중심 ‘도박중독’도 급증’이라는 기사를 통해 화상경마장에서 도박에 빠진 서민들의 모습을 그렸다.

장면 5. <조선일보>는 2011년 서울 서초구 교대역 사거리에 경마 도박장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후 건축허가 취소에 대해 한국마사회는 서울시와 서초구를 상대로 소송했다. 2012년 서울행정법원은 “사행산업의 무분별한 확산 방지를 위한 정당한 조치”라고 마사회 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초등학교에서 불과 20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서 청소년의 안전이나 건전한 정서함양에 위험을 발생”시킨다고 밝혔다.

장면 6. 1800년 프랑스에서 창설된 성심수도회 소속 수녀 8명이 한국에 1956년 10월27일 입국했다. 이들은 1960년 신입생 25명으로 용산에 성심여고의 문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1970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이 교정에는 명동성당을 설계한 코스트 신부가 설계한 용산신학교(1892년 완공)와 예수성심성당(1902년 완공)이 아직도 사무실과 성당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불과 230여m 앞에 한국마사회가 지상 18층, 지하 7층 규모의 화상경마장 개장 준비를 마쳤다. 주변에는 원효초교, 남정초교 등이 있다.

장면 7. 한국마사회 김영만 부회장은 한 인터뷰에서 학교보건법상 학교 부지로부터 200m 안에는 유흥업소나 숙박시설 등의 업종이 들어올 땐 주민 동의를 받아야 하지만 용산 화상경마장은 230m 떨어져 있어 문제없다고 말했다.

장면 8. 2013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은 “마사회가 너무 크게 이 나쁜 것(용산 화상경마장)을 하려고 하니 여러 문제가 생기지요. 저는 구청장님과 함께 반대합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 1월 새누리당 진영 의원(용산)은 박원순 서울시장을 방문해 용산 화상경마장을 막아 달라고 도움을 요청했다. 서울시도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이제 학생들은 교정과 교실에서 도박시설의 네온사인을 보게 될 것이다. 한탕을 꿈꾸거나 돈 잃고 화풀이하는 어른들 사이로 위험과 불안 속에서 학교를 오가야 한다. 법적으로 문제없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까? 좋은 환경에서 공부할 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이들이 최악의 환경에서 공부하지 않을 권리는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닐까? 공기업이 이래도 되는 것일까? 마사회 임원들은 자신의 딸이나 손녀를 이런 등하굣길로 보내고 싶을까? ‘승마’와 ‘경마’를 혼동하지 말자. 시장과 의원, 구청장과 마사회 임원에게 부탁하고 싶다. 학교 가는 길은 ‘경마장 가는 길’이 아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사설] 거짓 해명에 취재 통제, ‘대통령 골프’ 부끄럽지 않은가 1.

[사설] 거짓 해명에 취재 통제, ‘대통령 골프’ 부끄럽지 않은가

이재명 재판에 ‘상식적 의문’ 2가지…그럼 윤 대통령은? 2.

이재명 재판에 ‘상식적 의문’ 2가지…그럼 윤 대통령은?

[사설] ‘이재명 판결’로 ‘김건희 의혹’ 못 덮는다 3.

[사설] ‘이재명 판결’로 ‘김건희 의혹’ 못 덮는다

기후악당, 대한민국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4.

기후악당, 대한민국 [오동재의 파도를 넘어]

트럼프와 정상회담 전에 문재인부터 만나라 [박찬수 칼럼] 5.

트럼프와 정상회담 전에 문재인부터 만나라 [박찬수 칼럼]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